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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그런 아들이 또 말없이 내 옆에서 108배를 함께 하고 있다

by 그레이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행동으로 옮긴 일이 지금까지 딱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천 마리 학 접기. 껌종이에 행복, 건강, 사랑, 취직 등 소원을 적어 학을 하나하나 접어 유리항아리에 담았었다. 한참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면서였다. 지금 그 학 항아리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정성이었다.


두 번째는 삼천배. 내가 원했던 취직 시험에 아슬아슬하게 낙방하고 아쉬운 마음에 시작했다. 한 번만 더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마음으로 삼천배를 했었다. 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삼천배를 다 하고 나면 꼭 시험을 다시 보고 합격할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정말로 시험 응시 기회가 생겼다. 합격은 하지 못했다. 정말로 응시 기회만 생겼다. 합격까지 함께 빌었었어야 했던 것이다. 못내 아쉬웠지만 그 후로는 다시는 그 시험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수술 날짜가 미뤄지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108배가 생각났다. 입원하는 날까지 하루에 한 번씩 108배를 하기로 했다. 거실에 담요를 깔고 아버지 묘가 있는 쪽을 향해 108배를 하기 시작했다. 108배를 시작한 첫날, 내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남편은 둘째 날부터 내 옆에서 함께 절을 했다. 늘 그렇듯 이유를 물어보거나 같이 하자는 말도 없이 그냥 같이 했다.


3일째 되던 날은 우리 둘의 모습을 보던 딸도 108배를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며 힘들어하면서도 108배를 꽉 채웠다. 자고 일어나니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다 아프다며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꼭 엄마를 따라서 계속하겠다고 한다.


5일째 도는 날은 아들이 나에게 몇 번을 채우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내가 그냥 운동 삼아하는 거라고 했더니,


“그럼 삼천배 채우면 되겠지요? 우리 넷이 하루에 108배씩 네 번이면 432배, 삼천배가 되려면 7일이면 되겠네요!”


이러더니 같이 108배를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거실에서 108배를 했다.


나의 간절함이 우리 가족 모두의 간절함임을 알게 됐다. 나는 나로 인해 우리 가족이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들은 지금 사춘기다. 우리 아들은 새로운 걸 알게 되면 내 옆에 딱 붙어 그 신기한 마음을 줄줄 읊던 아이였다. 다섯 살쯤에는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니 식탁 의자를 옮겨 믹스 커피를 하나 꺼내 식탁에 올려두며 “엄마 내가 커피 내렸어!” 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내가 청소기를 돌리면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치워주고, 마른 옷가지를 개킬 때면 양말짝을 맞춰 가지란히 옆에 놓아주고, 과자를 주면 항상 내 입에 먼저 넣어주던 아이.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하고 첫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던 날, 선생님은 나에게 아들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게 보인다고 했다.


“혹시 우리 애가 너무 어린애 같은 가요?”

“아뇨~ 어머니 제가 이렇게 학부모 님들 면담 전에,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서 부모님 전화번호도 물어보고 좋아하는 것도 물어보고 하거든요. 대부분 아이들은 교탁 앞이나 제 옆에 서서 대답을 해요. 근데 ○○를 불렀더니 쪼르르 와서 제 무릎에 딱 앉지 뭐예요. 무릎에 앉고 나서는 선생님 왜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찌나 귀엽던지요.”


가족들에게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아이다. 이모들과 사촌 형, 누나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았다. 자기가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걸 아는 것처럼 이웃들에게도 늘 다정한 아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파트 복도를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를 꺼내다 주고, 내가 집에서 김밥을 싸거나 옥수수를 찌면 윗집이나 옆집에 가져다줘도 되냐고 물었던 아이.


사춘기라는 단어에 걸맞게 요즘은 말이 통 없다. 방에서 잘 안 나온다. 요즘 아들이 보이는 최대치의 애정표현은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에 누워 내 발 위에 자기 발을 얹어놓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또 말없이 자기 방으로 간다. 그런 아들이 또 말없이 내 옆에서 108배를 함께 하고 있다. 아들의 마음속에서는 얼마나 큰 간절함이 있을까. 그 마음이 나를 울린다.


아들이 말한 삼천배를 이미 채운 7일이 지나고도 우리는 108배를 계속했다. 내가 입원하기 전 날까지 넷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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