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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막내야, 너는 아빠를 믿어."

by 그레이스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면, 수술을 마치고 나서 회복기를 거쳐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명절이 지나고 수술을 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명절 전야가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남편은 명절 차례상이나 성묘를 위한 어떠한 요리도 하지 말자고 했다. 어머님, 아버님 산소는 자기만 다녀오겠다고 한다. 빈 손으로 성묘를 가자니 허전했다. 나는 우리 아빠 산소에는 소주라도 들고 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그러자고 했다.


내가 아픈 후로 우리 부부의 가장 큰 변화는 서로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다. 언쟁이나 잔소리도 다 에너지가 충만할 때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싸움을 하지 않으며 에너지 소모거리를 만들지 않고 있다.


우리 아빠는 부잣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녀와 장남, 차녀와 막내 사이의 딱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크게 주목받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림이 없을 정도의 땅부자였고, 그 시대에 의사를 큰 사위로 맞이할 정도로 재력가였다. 하지만 의사 사위가 6.25 전쟁 중에 강제로 끌려가 소식이 없게 됐고, 할아버지도 본인의 자랑이었던 그 사위 때문에 사상 의심을 받아 옥고를 치른 후 계속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빠에게는 어머니가 두 분이었다. 한 분은 엄마, 한 분은 어머니라고 부르며 지냈다고. 우리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지 3년이 되던 해에, 아빠가 ‘어머니’라고 부르던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래서 내 기억에 할머니는 한 분뿐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빠네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큰아버지가 군입대 대신에 옥살이를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우리 아빠는 결혼한 지 몇 개월 만에 입대를 해야 했고, 신혼 생활 대신 48개월이 넘는 군생활을 했다. 엄마는 아빠도 없는 집에서 많은 가족들의 식사와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고, 두어 번 외할머니에게 가서 결혼 생활을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동이 트기 전에 엄마를 다시 아빠네 집으로 데려다줬다고 한다. 이건 엄마가 아닌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다.


“ 그때는 결혼했던 여자는 혼자는 못 사는 줄 아는 세상이어서 네 엄마를 꼭 다시 데려다줬다. 지금 같아서는 간다고 해도 못 가게 했을 텐디 말이다.”


하면서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었다.


시어머니 두 분에 큰고모모와 딸, 그리고 큰아빠, 큰엄마, 사촌오빠와 언니, 작은 고모, 작은 아빠 등 정말 많은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던 때의 우리 엄마는 스무 살이었다. 그 세월을 견뎌내며 군대에 있는 아빠를 기다려준 엄마가 고마워서인지 우리 아빠는 엄마를 많이 사랑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눈물을 보며 엄마도 아빠를 많이 사랑했음을 알았다.

아빠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었다. 원리원칙주의자에 나태한 사람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일하다 머리를 다쳐서 수술을 여러 번 했었다. 아빠의 병실에서 잠들어 있었던 어느 날,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이 바닥에 있는 걸 보고 아빠가 움직이고 있었다. 뇌출혈 후 수술을 마친 터라 아빠의 몸엔 주렁주렁 참 많은 호스가 달려있었다. 그 많은 걸 한 손으로 쥐고 맨발로 내려와서 내 이불을 덮어주고 막 돌아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혹여나 내가 깰까 봐 조심조심 걷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에는 동그란 의자에 기대어 자고 있었던 내가 어느 순간 아빠 침대에 올라가 자고 있었던 적도 있다. 눈을 뜨고 너무 놀라서 아빠를 보니, 내가 편하게 누워 있을 수 있도록 침대 모서리 끝에 앉아 계셨다.


“나를 왜 여기 눕혀놨어. 아빠는 불편하게 왜 그러고 있고”

“나는 맨날 누워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앉아 있는 게 더 편해. 막내야 더 자.”

“여기 일반병실도 아니고 중환자실이야. 간호사 선생님들이 보면 나를 얼마나 혼낼 거야.”


그 전날까지만 해도 혼자서 소변을 못 보셔서 생전 처음으로 내가 아버지 소변을 받아내면서 울었었다. 그날은 조금 괜찮아지셨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해주셨다.


“아빠. 아빠 마취가 안 깨서 걱정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성당 종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빠 깨어나게 해 주면 무조건 그 종교를 믿겠다고 했거든. 아빠 깨어났으니까 나 이제 성당 가야겠어.”

“막내야, 너는 아빠를 믿어. 아빠를 부르면 아빠가 언제든 올게. 내가 죽어도 나를 믿어. 그러면 아빠는 죽어서라도 꼭 와서 들어줄게.”


그 말을 하는 아빠가 미우면서도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알았어, 그럼 이제 내 종교는 아빠다. 내가 부탁하면 앞으로 다 들어줘? 알았지?”


그러면서 아빠와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을 했다. 나는 지금도 놀라거나 다급한 일이 생기면 아빠를 부른다.


아빠 산소에 술을 한 잔 따라놓고, 아빠가 누워있는 자리를 한 바퀴 돌았다.


‘아빠, 나 진짜 아빠가 필요해. 아빠 내 말 듣고 있지? 나 수술 잘 끝내고 안 아프게 해 줘. 응? 나 아빠만 믿는다. 진짜 아빠만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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