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사진은 아직도 거실에 걸어두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아프고 나서부터 뭐든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다. “다음에 하자”, “나중에 가 보자” 같은 말을 하는 법이 없어졌다. 처음 잡혔던 수술 날짜에 수술을 할 줄 알았으나 다른 곳에 이상이 발견되는 등의 이유로 수술 날짜는 계속 변경되고 있다. 이제는 어디가 더 아프다고 해도 처음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는 않지만, 갑자기 훅 들어오는 찬바람에 몸서리치듯 ‘내일’, ‘다음’이라는 말을 하기가 겁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거실에 걸어 둘 사진을 골랐을 때, 딸아이가 우리 가족 네 명이 다 나온 사진만 거실에 걸자고 했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다 같이 가족사진을 찍자고 약속했었다. 달력에 사진 찍으러 갈 날짜를 빨간색 볼펜으로 동그라미 쳐 두고 사진관에도 예약을 했었다.
예약 날짜 전날부터 눈이 엄청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많은 눈을 보면서 다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아무도 사진을 다음에 찍자는 말을 안 한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말을 꺼냈다.
“차도 잘 안 다니네. 눈이 많이 오긴 했나 봐. 사진관에 전화해서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겠어”
“아직 시간 좀 남았어. 이러다 해 뜨면 금방 녹을 거야”
남편이 내 말을 에둘러 거절한다.
“저기 보면 다른 차들 다니는 거 같은데요. 제설 작업도 하고 있을 걸요”
“오늘은 집에 있어도 할 일도 없으니까 나가서 사진 찍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면 좋겠어요”
아들과 딸도 가고 싶어 한다. 그들의 마음이 읽힌다. 다음이, 내일이, 없을지도 모를 상황이 생겨서 후회나 아쉬움이 남을까 봐 그러는 거다. 다들 나갈 채비를 한다.
딸아이가 청바지에 흰 옷을 입자고 했다. 모두 거기에 맞춰 입기 위해 옷장을 열어보고 있다.
“꼭 오늘 가야 될까? 다음에 찍어도 되지 않아? 눈이 너무 많이 왔는데…”
“애들이 가고 싶어 하잖아~ 가서 찍고 맛있는 것도 먹자. 내가 조심해서 운전할게.”
여전히 눈길이 걱정인 나는 남편에게 몇 마디 말리는 말을 더 건네본다. 내가 아프지 않은 일상이었더라도 다들 이렇게 애썼을까?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운전할 수밖에 없는 도로 사정에도 누구 하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 명씩 듣고 싶은 노래를 선곡했다. 남편은 올드 팝송을, 아들은 최신 팝송을, 딸은 최신 가요를. 나는 겨울과 눈이 들어간 노래를 선곡해서 들었다. 음악 소리 외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몇 가지 안내 사항을 듣고 주어진 시간에 몇 개의 컨셉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앉았다 섰다를 여러 번 하고 둘씩 짝을 지어서도 찍었다. 웃기게 생긴 선글라스를 껴보기도 하며 우리는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인화할 사진을 고르는 데에는 촬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들 먼저 고르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이게 좋겠다고 하면 모두 다 그게 좋겠다고 한다.
원본 사진은 모두 담아가고, 내가 고른 사진 몇 장만 인화를 하겠다고 하니, 스튜디오에서는 보정을 해줄 테니 한 시간 후에 오라고 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걸어갔다. 눈길이 엄청 미끄럽고, 날씨도 매섭게 추웠다. 그래도 아무도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의 마지막 생일 즈음에 아빠는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조카들이 태어나고 다 같이 찍은 사진이 없었던 참에 다들 그러자고 했다. 온 가족이 마당에 모였다. 20명이 넘는 인원이 꽉 차게 단체 사진도 찍었고, 엄마랑 아빠랑 둘만 있는 사진도, 가족끼리만 모여서 찍은 사진도 남겼다.
우리 형제자매들끼리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아빠는 엄마랑 아빠가 나중에 필요할 사진일지도 모른다며 독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날 찍은 아빠의 사진은 장례식장에서 쓰였다. 그날 아빠의 눈이 유달리 촉촉해 보였다. 아빠는 그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 슬퍼하고 있었을까.
“아버지는 이 사진 찍을 때, 오늘을 생각했나 봐. 사진을 보면 볼수록 눈물이 보인다.”
유달리 아빠를 많이 닮아 아빠와 가장 애증 관계였던 작은 오빠가 장례식장에서 그 사진을 보고 내게 한 말이다.
점심을 다 먹고 사진을 찾았다. 인화된 사진들 중에 액자에 넣을 사진을 고르려고 했는데 남편이나 아들, 딸 모두 여전히 사진을 고르지 못한다. 그래서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아무래도 가족 모두의 눈에 눈물이 서려 있는 것 같다. 모두의 표정이 지금까지 우리 거실에 걸려 있는 사진들이랑 다르다. 결국 그날의 사진은 아직도 거실에 걸어두지 못했다. 누구도 걸자는 말이 없다. 우리 아빠의 사진이 그랬던 것처럼, 보면 볼수록 그날의 마음이 떠오를 거 같아 겁이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