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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박언니

"메로나 아이스크림 하나 사다 줄 수 있어?"

by 그레이스

입원 첫날, 남편은 내 짐을 올려주고 내일 오겠다며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갔다. 병실은 2인실이었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나서 병실을 둘러봤다. 수술 후 열흘에서 2주 정도는 이 공간에서 지내야 했다. 짐 정리를 간단히 마치고 침대에 눕자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앳된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내 혈관을 한 번에 찾지 못했다. 두 번째에도 실패했다. 내 눈에 눈물이 흐르는 걸 봤는지 ‘다른 선생님을 데려올까요’라고 묻는다. 내 몸이 주사 바늘을 무서워하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더니, 이번엔 한 번에 꼭 끝내겠다며 세 번째 시도만에 성공했다. 방금 전 흘렸던 눈물이 멋쩍어서 나는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주스 한 병을 선생님께 드리며 고맙다고 했다. 선생님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고는 나갔다.


침대에 눕자 이 생각 저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여태껏 참아왔던 눈물이 소리 없이 줄줄 흘렀다. 눈물에 콧물까지 연신 화장지로 얼굴을 닦고 있을 때, 커튼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만나서 반갑다고 하기에는 뭐 한 장소긴 하네요.”

“아.. 네”

“나는 목포에서 왔어요. 추석 때 음식을 잘못 먹은 줄 알고 응급실에 왔다가 알게 됐어요, 나는 간까지 전이가 되었다는데, 이전 병원에서는 수술만 하면 잘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희망을 갖고 왔는데, 여기서는 간에 복수가 차서 복수가 줄어들어야 다시 촬영도 하고 검사도 하고 수술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방에 나 혼자 한 5일 정도 있었더니 막 말이 너무 하고 싶었나 봐요.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하네요.”


그분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멈췄다. 그분은 내가 울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날 달래기 위해 먼저 말을 걸어 주신 거였다.


아이가 셋이 있고, 막내가 막 성인이 되었다고 했다. 내 수술 일정을 물으시더니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아주 좋은 케이스라고, 수술하기 전에 항암 치료를 하고 항암 치료를 해서 사이즈를 줄이고 수술하는 케이스가 많다고. 나보고 연신 잘 될 거라는 말을 해줬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나를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은 병을 과일에 비유했다. 과일에 흠집이 나서 그걸 깎았을 때, 겉에만 살짝 흠이 있는 경우도 있고 겉에는 점 같은 흠이었는데 깎아봤더니 안이 완전 상해 있는 경우도 있지 않냐고. 그래서 모든 건 수술이 끝나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찰떡같은 비유였고, 난 그 말이 참 야속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병원에는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었다. 내 룸메이트인 목포 박언니는 내가 입원하던 날이 가장 건강해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고, 잘 먹지 못했다. 병원에는 공동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어서, 호출이 없는 이상 간병인들은 병실에 잘 오질 않았다. 하지만 내가 입원한 이튿날부터 간병인들은 수시로 우리 병실에 들락날락하며 언니를 살폈다.


언니는 복수가 차서 숨소리가 편치 않은 상태에서도 아이들과 통화를 하고, 남편에게 당부 전화를 했다. 또, 나에게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들을 먹으라며 이야기하고, 샤워실은 어디쯤에 있으며, 자기는 상관없으니 보고 싶은 게 있으면 TV를 마음껏 보라며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언니는 목욕을 하고 싶다며 간병인들에게 부탁해 목욕을 다녀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언니는 지금의 내 상황이 얼마나 좋은 지 이야기해 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그 과일 비유가 언니가 듣고 싶은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싶어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언니는 “나는 내 지금 상태가 깎아나 볼 수 있는 과일이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순간 미안해졌다. 잠깐의 정적 후 언니는 나한테 뭐가 제일 걱정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이요. 애들이 성인만 되었어도 마음에 덜 걸릴 것 같아요.”

“자기는 우리 아이들이 성인인 게 부러웠겠구나.”

“맞아요. 나는 그것이 부러웠고, 또 언니 나이가 부러워요. 전 결혼을 늦게 해서 내가 언니 나이여도 우리 아이들은 그만큼 크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언니 나이가 부러워요.”

“내 나이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처음이네.”


그러면서 언니는 조금 웃었다. 나는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하러 다녔고, 수술 후에 대한 설명도 들으러 다녔다. 일정을 마치고 두 시간 정도 지났을 까. 병실로 가기 위해 간호사 선생님들의 센터를 지나칠 때, 목포 박언니의 상태가 갈수록 안 좋아지니까 보호자에게 상주 간병을 허락한다는 연락을 해야겠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병실 문을 열고 커튼 뒤에 언니를 불렀다.


“언니~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내일 저 수술하면 아무래도 움직이기 불편할 것 같은데, 그리고 10시 이후로는 금식이라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검사받으러 돌아다니다 보니까 여기 식당도 있고, 죽집도 있고, 빵집도 있고 별거 별거 다 있더라고요. 나는 소금빵을 하나 먹어볼까 하는데, 언니는요~?”

“먹고 싶은 게 없긴 해. 복수가 차서 그런가 배도 안 고프고… 소금빵 사러 갈 거야?”

“네~”

“그럼 나 메로나 아이스크림 하나 사다 줄 수 있어? 시원한 게 먹고 싶네.”


내가 사다 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언니는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내가 입원하기 전에 내 침대에 걸린 이름표를 보고, 나보다 한참 어리구나 하며 생각했다고, 그리고 같은 성씨라 좋다고 생각했다고.


다음 날, 목포 박언니의 병실이 옮겨진 후 나는 퇴원할 때까지 언니를 보지 못했다. 언니의 자녀들이 보호자가 한 명씩 상주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근처에 머물면서 시간에 맞춰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만 전해 들었다. 언니가 부디 건강한 모습이길, 언젠가 언니랑 다시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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