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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사이

우리는 스페인 어느 골목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다

by 그레이스

수술 후 밤새 구토를 했다. 마취제와 약물 부작용으로 밤새 힘든 시간을 견뎠다. 다음날 오전 일찍 내 병실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지 간호사 선생님들이 침대 시트를 바꿨다.

잠시 후 캐리어를 끌고 한 부부가 들어왔다. 침대에 드리워진 커튼 탓에 언뜻 비치는 모습과 말소리로 짐작만 했다. 가방을 열고 정리하는 동안 환자로 추정되는 여자분이 남편에게 집에 있을 아이의 등하교 시간과 반찬 배달 시간을 여러 차례 일러줬다. 이후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 링거를 꼽는데 지난날의 나와 마찬가지로 혈관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부부는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케모포트 연결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 케모포트 : 항암치료 시 정맥 혈관 대신 팔 또는 다리 등 몸속에 삽입하는 작은 관으로 암세포와의 직접 접촉을 피하고 약물 주입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터진 혈관을 보며 신경이 곤두선 그녀의 목소리는 남편의 위로에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하고 수술을 하러 온 것 같았다. 코로나 탓에 보호자는 병실에 오래 있을 수 없었고, 곧 그녀와 나만 병실에 남게 되었다.


나는 6남매 중 막내로 자라서인지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법도 잘 없다. 커튼 사이로 눈물 소리가 나는 듯하자 몇 번이고 말을 걸어볼까 고민이 들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가 수술 전 검사를 받으러 가는 것 같았다.


수술하고 다시 눈을 뜨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리라 다짐했건만, 커튼 밖의 그녀에게 한마디 말조차 걸지 못하는 나를 보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돌아오면 반드시 말을 걸어보리라 하는 다짐과 함께.


잠시 후 수액이 달린 홀대를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냉장고에 음료수랑 먹을 게 좀 있어요. 혹시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드세요.”


용기를 내서 한 마디를 건넸다.


“저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알게 돼서 어제 막 수술을 했어요.”

“저는 어느 날 손에 뭐가 잡혀서 병원에 갔더니, 크기가 엄청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항암치료를 했더니 크기가 좀 줄었어요. 항암을 2차까지 하고 최근에는 아주 미세한 흔적만 남았다고, 수술하고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드디어 내일 수술을 해요.”


한 마디 더 붙이자 그녀도 답을 해왔다.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커튼 사이로 우리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또 나랑 같은 해에 결혼을 해서 나랑 같은 해에 아이도 낳았다. 우리 아들과 그녀의 딸은 동갑이었다.


그녀는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스페인에 가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물가가 비싸서 스페인어를 쓰는 멕시코로 가서 7년을 살았다. 멕시코는 치안이 아주 좋지 않아서, 7년을 거주하는 동안 두 번이나 강도를 당했다. 한 번은 총을 든 강도가 사무실로 쳐들어왔고, 본인은 너무 놀랐는데 다른 동료들이 익숙한 듯 잘 대처해서 그것이 더 놀라웠고,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택시에 있던 강도가 헤치지 않을 테니 가방만 두고 내리라고 했다. 멕시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낮에는 경찰인 사람이 밤에는 도둑이니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와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녀는 유학 경험이 있었고, 남편은 유학 생활을 동경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딸과 셋이 함께 떠났다. 막상 미국에 도착하니 본인과 딸은 잘 적응을 했지만, 남편은 반년만에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생겼고, 돌아간 후로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싶다고 했다. 그 탓에 그녀도 딸과 6개월 후에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고, 그때의 남편이 참 미웠다.


나랑 이야기하는 동안 중간중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엄마, 아빠, 동생,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과 통화를 했고, 전화가 끝날 때쯤에는 늘 사랑한다는 말을 붙였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니. 앞으로 나도 마음을 표현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잠깐 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그러했듯이 대화를 하며 수술 전 긴장감을 줄여보고자 한 것 같다. 이후에는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돌며 그녀에게 항암치료가 아주 잘 되어서 암이 흔적만 남았다고, 내일 수술 중에 조직검사만 해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했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날 그녀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수술을 마치고 돌아왔다. 보호자인 남편의 목소리가 아주 밝았다. 그녀의 암이 진짜 흔적만 남았다고, 그것도 아주 미세해서 조직검사를 하기 위한 표본만 떼어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큰언니와 같은 증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니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문자로 보냈다. 언니도 항암치료 잘 되면 수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암이 없어질 거라고. 그러니 마음 편하게 치료받으라고. 희망을 꾹꾹 눌러 담아 보냈다.


그녀가 퇴원하기 전날까지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마주 보고 이야기하지 않아서일까.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내가 퇴원하던 날, 우리는 병원에서는 다시 만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녀는 딸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스페인에 가서 반년 살기를 할 거라고 했고, 나도 스페인으로 꼭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럼 우리 스페인에서 우연히 꼭 만나요.”


둘 다 건강하게. 앞으로 5년을 더 건강하게 살아가면 우리는 스페인 어느 골목에서 마주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그때 병원 스피커에서 코드블루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목포 박언니가 아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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