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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방

추억을 꺼내가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by 그레이스

오늘 오후 두 시에 수술을 한다. 수술하면 당분간은 샤워를 할 수 없다고 해서, 아침 일찍 샤워를 했다. 내 몸 이곳저곳을 닦았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어딘가가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소보다 한번 더 보고 한번 더 닦았다.


채혈도 하고 혈압도 몇 번을 재고 그러는 사이 나는 통증도 없고 괜찮은데 꼭 수술이 필요한 건가 싶었다. 이대로 살 수는 없는 걸까. 수술 일정이 잡히기 전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 수술 후에 부작용도 있다는데 왜 수술을 무조건 해야 하는 건지… 갑자기 수술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을 때, 딸아이의 문자가 도착했다.


‘엄마, 저는 잘 도착했어요. 아침도 먹었고, 오늘은 아마 언니 오빠들이랑 캠퍼스 투어를 할 것 같아요. 끝나고 집에 가면 이제 매일 거실에서 잘 거예요. 거기 홈캠이 있으니까 엄마도 그걸로 우리 봐요. 나도 재밌게 잘하고 올 테니까 엄마도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내 생각만 하고 잘하고 와요.’


딸은 대학생 언니오빠들과 함께 하는 겨울 캠프를 가는 길이다. 가족들은 내가 입원하고 나서부터 거실에서 다 같이 자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특별한 날을 빼고는 거실에서 다 같이 모여서 자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말이다.


남편이 도착했다. 잘 잤어 한 마디로 시작해서는 쉴 새 없이 말을 한다. 아들은 무얼 먹었고 딸은 무얼 먹었고, 빨래는 돌려놓았고. 아이들 먹으라고 과일을 깎아서 냉장고에 넣어놨고 어제부터 다 같이 거실에서 나 올 때까지 함께 자기로 했고. 내일쯤 나를 보러 같이 올 거고, 딸이 추울까 봐 핫팩을 챙겨줬고 식탁에 만 원짜리 몇 개를 두고 와서 이따가 간식 먹고 싶으면 그걸로 사 먹으라고도 했다고.


“자기야. 나 이제 겨우 24시간 정도 집 밖에 있었어. 수술은 내가 하는데 자기가 더 긴장하는 거 같지 왜.”


그제야 나를 한번 쳐다봐준다.


조금 있으니 아들에게 문자가 온다. ‘엄마’ 딱 두 글자다. 그러더니 문자를 쓰다 말았다 한다.


‘아빠랑은 못 자겠어요 코를 엄청 골아요. 동생은 너무 저한테 달라붙어서 자려고 해요. 아침에는 제가 별로 먹기 싫은 아침밥을 줬어요. 아빠가 자꾸 잔소리도 해요.’


무언가 말은 해야겠고 마음속 말을 다 하기는 쑥스러운가 보다.


‘엄마가 최대한 빨리 갈게.’

‘엄마가 가장 제일 믿는 건 우리 아들이야. 잘 지내고 있어.’


나는 내가 가족의 곁을 오래 비우지 않길 바라며 아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수술방 입구에서 보호자를 찾는다. 설명을 듣고 사인을 하고 오더니 남편이 길어봤자 3~4시간 이라며, 낮잠 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고 한다. 그 말을 하면서도 내 얼굴을 못 쳐다보고 내 손만 만지작거린다. 웬만한 일에는 다 덤덤하던 사람인데 그도 긴장을 하고 있는 건지 손바닥이 축축하다.


수술방 앞에는 나처럼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랑 보호자들이 서너 명은 더 있어 보였다. 이 병원에서 아버님의 마지막을 보았고, 큰삼촌의 마지막을 보았다. 갑자기 무서워진다. 남편 손을 꼭 잡았다.


“다 괜찮을 거야. 그럴 거야. 나 여기 있을게.”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용기를 내서 한 말일테다.


수술방으로 들어가자 선생님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고 마취제 투여를 알렸다. 잠드기 전까지는 이 공간이 가짜 같았다. 내가 들어간 문 맞은편으로 장비를 가지고 들어오는 선생닌ㅁ, 그 문 왼쪽에 의사 가운을 입고 장갑을 끼고 있는 선생님, 또렷하진 않지만 수술방은 네 면에 모두 문이 있었던 것 같다. 마취과 선생님이 20부터 15까지 숫자를 셌고, 그 이후로 기억이 없다.


누군가가 계속 말을 걸어와서 눈을 떴더니 남편이었다.


남편은 수술 후 2시간 동안 잠들지 않게 하라는 의료진의 당부로 내게 계속 질문을 하고 있었다.


“자기야 이거는 꿈인 거 같은데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이 쓰러져서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라.”


남편은 내 귀에 대고 “그거 꿈 아니야 수술방에서 레스던트 의사 선생님이 쓰러졌는데 의료진들이 침대로 이송하면 밖에 있는 보호자들이 놀랠까 봐 의자로 이송해야 하네 침대로 이송해야 하네 하면서 소리가 났었어, 또 수술을 한꺼번에 하나 봐 교수가 수술하면 다음 의사가 봉합하고 또 다른 의사가 조직 채취하고 그런 식으로. 그래서 아마 자기가 봤던 장면들이 다 맞을 거야”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눈이 자꾸 감겼다. 남편은 내 팔다리를 연신 주무르면서 나를 깨웠다. 내가 답해야 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며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 아들, 딸 태몽이 기억이 안 난다며 뭐였는지, 또 몇 시 몇 분에 태어났는지, 우리 함께 처음 봤던 영화 제목이 뭐였는지. 자기가 처음 줬던 선물이 인형이었는지, 우표였는지... 이 사람이 이런 걸 다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을 만큼의 질문 아니 추억을 꺼내가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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