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어느 푸른 날 구의동 작은 식당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한 사람의 인생과 마주하는 일이 실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3년 전 우린 한 단체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 번쯤은 만나서 식사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의향을 물었다. 그런데 흔쾌히 좋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만날 날을 기다렸다.
구의동 골목에 있는 작은 이탈리안식당은 가정집처럼 아늑하고 정겨웠다. 처음 간 곳이었는데 마치 공간마저도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는 느낌이었다.
식당에 먼저 도착한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여분쯤 흘렀을까? 한 청년이 걸어 들어왔다.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단번에 그가 내가 만나기로 한 청년임을 알았다. 그동안 얼굴을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린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맛있는 화덕 피자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톡으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그동안 우린 톡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던 사이인데도 마치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처럼 익숙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느라 피자는 다 식어버렸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도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으리라.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 청년 참 대견했다.
이십 대 청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신의 꿈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 일이 비록 재정적으로 풍요를 가져다주는 일이 아닐지라도
그 꿈을 위해 지금의 어려움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청년이었다.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담담하게 풀어내던 청년은 비록 부모로부터 전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감사하게도 주위에 좋은 어른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다. 누군지 다 알지 못하지만 그 사람들이 소중한 한 생명을 지켜냈으니 말이다.
이 청년은 자립준비청년이다. 자립준비청년은 보육원등 시설에서 자라고 성인이 되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삶에 대해 조언을 해줄 만한 어른들이 주위에 없어 방황하는 청년들이 많다. 그동안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낸 것만으로도 참 기특한데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의 힘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 친구들에게 어쭙잖은 위로나 충고가 아닌 지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그런 비빌 언덕, 특별한 반찬 없어도 엄마가 정성껏 차려낸 청국장과 구운 생선이 놓인 따뜻한 집밥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보면 내 힘으로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십 대와 삼십 대에도 부모의 존재는 분명히 필요했다.
인생은 수학문제 풀듯 답이 딱 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청년과 이야기하는 내내 청년이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단어는 다름 아닌 외로움이었다. 참 가슴이 아팠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도 종종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가족 없이 자란 청년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난 청년은 참 단단했다. 무엇이 이 청년을 그토록 단단하게 만든 것일까?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청년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이 청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