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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Feb 01. 2020

인종차별주의자라 욕먹다.

밴쿠버는 토론토보다 훨씬 더 노숙자와 정신 나간 사람들(?) 이 많았다. 토론토의 겨울은 매우 추워 길에서 자면 얼어 죽지만 밴쿠버의 겨울은 적당히 선선한 편이라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일 했던 곳은 그런 노숙자들의 성지 끝자락이자 부촌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었는데, 손님은 주로 이 지역에 사는 백인들이었지만 가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도 찾아오곤 했다. 이들은 화장실에서 씻기도 하고, 고약한 악취가 나며, 변기 뒤에 마약을 숨긴다는 소문도 있어 화장실 사용을 막아야 하지만 괜히 말을 섞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까 싶어 많은 알바생들이 못 본 척하며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아닌지라... 한 번은 노숙자 아저씨가 다짜고짜 들어와 손님 전용이라 소리치는 나를 무시한 채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문을 두들기며 나오라고 해도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만 날 뿐 오랜 시간 응답이 없었다. 하여 우린 어쩔 수 없이 경찰까지 부르게 되었고 급하게 사장님도 오셨다. 2명의 경찰과 2명의 사복경찰이 그를 에워싸고 뒤로 수갑을 채운 후 몸과 소지품을 수색하며 조사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며 마침 내가 며칠 전, 힘 조절 실패로 부러뜨린 대걸레의 기둥을 붙잡고 '혹시나 보복이라도 하러 오면 어쩌지' 하고 맘 졸이며 서 있었다. 이후 사장님이 화장실에 잠금장치를 달고 우리가 열쇠를 준 손님만 이용할 수 있게 바뀌었다. 


그리고 일주 뒤, 크리스마스 이브날 정신없이 일하고 한 숨 돌리고 있는데, 한 노숙자가 당당하게 들어와 화장실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손님만 이용할 수 있어!!'라고 했지만 무시하고 화장실 쪽으로 가더니, 이내 열쇠가 있어야지만 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다짜고짜 내게 다가오며 화를 냈다. 내가 아무리 '바로 옆에 스타벅스가 있다', '우리 정책이다', '나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해도 듣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내게 인종차별주의자(racist)라고 화를 냈는데 나와 다른 알바생은 그 사람이 차별(dicscrimination) 이란 단어를 몰라서 그냥 인종차별 단어를 말한 거라고 추측했다. 왜 본인의 허름한 모습만 보고 화장실을 못 쓰게 하냐며 '내가 아들과 왔으면 어쩔 건데?' 같은 되지도 않는 말만 지껄였다. 결국 나는 화가 나서 '네가 더 인종차별주의자다. 지금 내가 동양인 여자라서 이렇게 따지는 거 아니냐'라고 화를 냈지만 그는 계속 나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화를 냈다. 그리고 떠나면서 그가 남긴 한 마디, 



'넌 도널드 트럼프 같아!!' 



'네? 누구요?' 그제야 나와 알바생은 그 사람이 진심으로 '인종'차별 주의자에 대해 말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고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 밴쿠버에선 돈 많은 동양인이 (사실은 가난하지만) 가난한 백인을 차별하는 도시 인가 보다. 물론 사실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고마워. 나도 그처럼 부자 될 거야' 

라고 대꾸하는 나를 뒤로하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물론 내가 말한 스타벅스에는 가지도 않았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대통령과 같다니... 평소 그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지만 이 날 만큼은 좋아하고 싶었다. 그래야 덜 기분이 나쁠 것 같았으니까... '내가 살다 살다 별 희한한 말도 다 들어보는구나' 생각하며 퇴근을 하는데 '그래도 캐나다니까.. 그것도 캐나다 중에서 밴쿠버니까 이런 소리도 듣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나왔다. 


흔히들 이민을 생각할 때 '인종차별' 걱정을 하곤 하는데, 역으로 나처럼 인종차별주의자란 소리를 들으며 억울한 경우도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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