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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Apr 03. 2020

엄마와 쫄면

얼마 전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안타까운 게시물을 봤다. 일본의 어느 TV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이들이 자신들이 키우던 물고기를 울면서 먹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왜 그런 짓을 하는지는 설명이 없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것이니 만큼 취지는 좋았던 것으로 짐작했다. 물고기의 소중함?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삶의 허무함에 대한 예고?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 나로서는 그 취지가 뭐였을지 도무지 추측할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본인이 키우던 물고기를 울면서 먹으면서 그 아이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란 거였다. 


나는 아동학이나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실제로 자식이 있지도 않으므로 이것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의 하나라고 전문가가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울면서 먹게 하는 행위'가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른이 다 돼서야 쫄면을 먹기 시작했다. 면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쫄면을 먹지 않는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난 한 번도 쫄면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왜 싫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싫었으니까. 다시 먹기 시작한 쫄면도 닭갈비 먹을 때 넣어먹는 정도지 분식집 메뉴의 쫄면은 아직도 선호하지 않는다. 반대로 엄마는 쫄면을 정말 좋아했다. 대여섯살 쯤이었을까? 엄마는 거의 매주 토요일 낮에 동네 분식집에서 쫄면을 하나 시켜서 드시곤 했는데 항상 나에게도 나누어 주셨다. 그중 하루가 유난히 뇌리에 박힌 이유는 쫄면을 먹던 엄마가 전화를 받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엄마가 그렇게 운 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아기라서 기억을 못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날은 내가 엄마가 우는 것을 처음으로 본 날이었다. 


엄마는 서럽게 울었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 답답하고 무서워졌고 이내 같이 울었다. 어릴 때부터 택시만 타면 나보다 먼저 내린 엄마가 갑자기 문을 닫고 차를 출발시킬 것 같은 공포감에 택시에서 내릴 땐 언제나 먼저 내린 엄마의 치마 끝자락을 붙잡으며 따라 내렸던 나는 그 날 역시 엄마가 이렇게 울다가 날 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으리라. 나중에야 안 사실은 그 날 엄마가 엄마의 외할머니의 암 소식을 듣고 울었다는 것,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것이 내가 쫄면을 안 먹게 된 이유란 것이다. 정작 그때 암 선고를 받으신 엄마의 외할머니는 너무나도 건강하셨던 엄마의 아버지보다도 더 오래 사셔서 그 날 이후로도 약 10년을 더 사셨다. 


어린 시절의 강한 기억은 평생 남는다. 어릴 때 우리가 작은 일에 행복하고 껄껄 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큰일이 아닌 일에도 강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심리적 불안은 어릴 때 생길 확률이 크다. '어린애 앞에선 물도 제대로 못 마신다'라는 말이 있는데 키우는 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 즈음되자 그 뜻이 이해가 된다. 더군다나 내가 이유 없이 쫄면을 먹지 않았던 것은 어릴 적 기억에 대한 아주 작은 결과겠지만 '폭력, 학대 같은 큰 충격을 받은 아이들은 얼마나 더 큰 결과를 안고 살아갈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다. 내가 가진 나쁜 기억이라 하면 엄마가 운 기억, 겁 없이 대들다가 아빠한테 맞은 기억, 집에서 처음으로 쫓겨난 기억, 좀 더 컸을 때 집에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집 앞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베란다에서 날 바라보는 화 난 엄마를 발견한 기억 등... 이 있지만 나열할 수 조차 없는 수많은 좋은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20년 넘게 쫄면 맛을 모르고 살게 하기도 했지만...     


다 커서도 나쁜 일들은 되도록이면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은 것 같다. 부정적인 일보다는 긍정적인 일만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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