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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Jul 22. 2019

애증의 관계(2)

한국에서

내가 5년 전 한국에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을 때 비록 유학이나 이민 계획은 전혀 없이, 충분히 짧은 시간인 고작 1년의 워홀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에게 수 없이 되뇌고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사실 영어를 배우거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려는 대부분의 목표와는 다르게 그 당시 나는 그저 내가 처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밑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에 하루하루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었고, 나 스스로 끝내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충동적인 선택을 하는 것 대신 선택한 캐나다행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대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열세시간 남짓의 비행시간 동안 나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했다. 

'그 전의 나는 죽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만큼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나 역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뀐 척하는 것이거나 바뀌어 보일 뿐, 그 기본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나는 이 곳에 와서 살면서 정말 많이 바뀌었다. 내가 생각해도 놀랍고, 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상황이 바뀌고, 바뀌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의지가 있다면 사람은 바뀐다.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가득 찼던 그 마음을 그대로 나 자신을 바꾸는데 이용했다. 당연히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정도의 간절함이라면 사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완전히 바뀌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아주 어릴 적의 나로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모든 게 가능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준 것이 실은 내가 싫다고 떠났던 그 도시였다. 

그 도시에 살면서 나는 그전의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결과를 만드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도시는 나에게 수 없이 많은 단점들에 가려 보지 못했던 내 안의 수많은 장점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 만큼 그에 맞는, 아니 그보다 더 큰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한국에 있는 내 오랜 친구들이 '너는 거기 가서 잘 풀리는 것 같다'라고 할 만큼 도시와 내가 갖는 '케미'는 특별했다.  


지역이나 집 같은 공간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 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마치 우리의 조상들이 믿었던 풍수지리처럼... 

외국으로 떠난 모든 사람들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 왔는데 이상하게 일이 안 풀리고, 일도 못 구하고, 이것저것 문제도 겹쳐 결국은 한국에 돌아가는 사람들을 참 많이 보았다. 

나 역시 특정 나라를 여행하며 자꾸 안 좋은 일이 겹쳐 결국 여행을 중단했던 일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바뀔 수 있게, 또 잘 지낼 수 있게 나를 허락해 준 그 도시가 너무 고맙다. 앞으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살더라도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살았던 분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곳이 한국보다 더 고향 같고 애틋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계속 살 생각은 전혀 없다. 이건 정말, 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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