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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Jun 06. 2024

캐나다에서 백수 되기(1)

소처럼 일했던 지난 날들... 

자꾸 캐나다에 관련된 부정적인 글만 쓰게 돼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버틸 주제가 생겼는데 그게 아주 부정의 끝이랄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왜냐고? 그토록 바라던 퇴사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퇴사를 앞두고 서로 의지하며 함께 일해온 한국인 동료가 나를 굉장히 부러워했다. 그녀는 지금 쓰리잡을 뛰고 있다. 본업인 직장생활, 한식당 서빙, 영어 과외까지... 그러니 그녀 입장에서 일을 1도 하지 않을 내가 얼마나 부럽겠는가?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도 쓰리잡 뛰던 때가 있었어요. 과거의 그래이스가 지금의 그래이스를 쉬게 해주는 거예요. 하하하" 그렇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아니 처절하게 살았다. 


그 시작은 10년 전, 워홀 생활이었다. 내년에 난 이곳에 없을 테니 즐길 거 다 즐기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워홀 비자가 끝나면 또 언제, 어디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돈도 많이 벌어놓으려고 했다. 그렇게 전설로만 내려오는(?) 40시간 풀타임 두 개 뛰기... 그러면서 온갖 파티에 빠지지 않는... 그래서 집주인 언니가 내가 도망갔거나 실종 됐는 줄 알고 내 캐리어를 확인하는 일까지 생긴...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다. 

1년 후 워홀 비자가 끝났지만 나는 거처를 쉽게 정하지 못했고, 관광비자를 받아놓은 상태에서 한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말할 수 있지만 이 시기에 캐나다 컬리지 진학을 준비하면서 한식당에서 현금을 받으며 불법으로 일을 했다. 생각해 보면 워홀시절부터 이때까지가 참 행복했던 것 같은데... 그땐 미처 몰랐다. 


이후 컬리지를 가서도 라멘집에서 일주일에 이틀, 하루종일 일을 하며 학교 생활을 했다. 어학원조차 다니지 않은 내가 그저 서바이벌로, 살기 위해 배운 영어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무리가 있었지만 (심지어 전공이 영어가 제일 중요한 마케팅) 어째 저째 버티고, 잘 넘어갔다. 그리고 나를 좋게 봐주신 라멘집 사장님의 추천으로 유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유학원 근무는 충격적이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끼리는 친하고 좋았지만 업무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팁을 받는 서버보다 돈을 못 벌었다. 이후 어학원으로 옮겨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때 매주 금요일은 피아노 레슨을 하고, 가끔씩 집 거실에서 손님을 받아 눈썹 연장을 하며 푼돈을 벌었다. 쓰리잡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브런치에 글도 썼다. (나중에 출판이 된 바로 그 글들...) 


이후 영주권을 신청하고 한국에 잠시 있다가 밴쿠버로 향했다. 밴쿠버에서 3개의 다른 포케집에서 알바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통은 두 군데 시프트 조절하기도 힘든데 세 군데서 어떻게 일했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는 하나를 먼저 구해서 일을 시작하다가 또 다른 곳을 구하고, 이후 세 번째를 구하면서 첫 번째를 그만뒀던 것 같다. 한국에서 포케집을 창업할 생각이라 다양한 곳에서 경험하며 일을 배우고,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다. 


팬데믹 3년을 한국에서 보낸 후, 2022년 12월에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다. 다행히 생각보다 빠르게 일을 구해서 시작한 곳이 현재 일하고 있는, 다음 주에 마지막 출근을 할 바로 그 직장이다. 사실 내 성격대로라면 나도 주말 알바를 구한다던지, 평일에 피아노든 영어 과외든 뭔가를 하나 더 하는 게 맞다. 한국에 있는 3년 동안에도 주 7일을, 아침 1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하면서 주말에 새벽까지 술 먹고 놀며 서울에서의 삶을 즐겼으니까... 하지만 1년 5개월 동안 (한 달 한국 휴가 다녀온 거 빼면 1년 4개월)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주말 알바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 워홀러들이 워낙 많이 들어와서 주말이나 평일 저녁 알바 자리는 면접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물론 양해 구하고 안 간 적도 있음) 이제 더 이상 20대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점도 크게 한몫한 것 같다. 사실 나도 식당에서 서빙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도 했다. 머리로는 '남은 시간에, 특히 주말에 글을 많이 써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멍 때리며 보낸 것 같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일 중독자 같은 삶을 살았던 내가 어떻게 일을 3개는커녕 2개도 안 하고, 그마저도 그만두게 된 걸까?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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