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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Jun 19. 2024

캐나다에서 백수 되기 (2)

이제 나는 자발적 백수 

물가가 비싸다면서, 방값으로 평균 백만 원씩 든다면서 어떻게 이직도 아니고 퇴사를 할 수가 있나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한 문장으로 대답해 줄 수 있다. "저는 돈 보다도 저의 정신 건강이 더 소중하거든요." 

사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 말렸다. 특히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작정 퇴사하지 말고 이직을 하라며 말렸다. 현재 캐나다에서 괜찮은 일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기에... 토론토에서 일을 구하는 게 정말 힘들다는 걸 알기에 이직이 아닌 퇴사를 결정했다. 이직해야 그만둘 수 있다면 그만큼 더 이곳에서 일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에게 "To keep my dignity" 하기 위해서 자발적 백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나의 존엄...라고 하니 거창한데 나의 자존감, 나의 존재 의미를 지키기 위해 그만둔다는 뜻이다. 보통 직장인들은 한 달 내내 퇴사를 울부짖다가 월급날 통장에 들어온 월급을 보며 퇴사 욕구를 누른다. 내 친구들만 봐도 당장 그만두면 아직 남은 학자금 대출, 매달 생기는 카드값을 갚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월급 때문에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캐나다는 2주에 한 번 주급을 받는다. 주 40시간이므로 80시간에 해당하는 금액에 세금을 제외한 나머지가 2주에 한 번씩 금요일에 통장에 입금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액수를 확인하며 나의 dignity를 잃었다. "아, 내가 고작 이거 벌자고 그렇게 뼈를 갈며 영혼을 좀 먹어가며 일했구나.", "이 바닥 경력 거의 4년에, 모르는 업무가 없고, 그 누구도 나보다 더 이 일을 잘할 수 없다고 자타가 인정하는데도 이거 버는 거구나." 

현타가 왔다. '이렇게 뼈를 갈고, 에너지를 다 쏟아내서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뻗어버리고 이거 받을 바에야 그냥 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게 내가 왜 돌아왔더라. 

캐나다는 워낙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던 상관 안 하는 분위기라 내가 이 나이에 지망생이라고 해도 루저(실패자) 같지 않다.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이 때문에 생기는 사회의 압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계속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을 하던 '그래서 얼마 버는데?'로 끝나는 한국이 싫었다.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돈보다는 꿈을 좇고 싶었다면 그냥 돈 못 버는 인간이 현실을 회피하려는 소리로 들릴까? 


내가 연봉 몇억을 받는 어마어마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그만둘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일하면서도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들보다 아주 조금 더 버는 정도일 뿐이었고 그래서 쉽게 그만둘 수 있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신 5시까지 일하지 않고 1시 반에 퇴근한다. 갑자기 출근할 곳이 사라지는 것보다 이렇게 중간 단계를 거치고 백수가 되는 게 나에게도 좋은 일인 것 같다. 퇴사 후 살게 될 삶에 대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살면서 오래 쉬어본 적이 가게 창업 준비하느라 일 안 했을 때 빼고 처음이다. 부디 내가 생산적인 삶의 루틴을 잡고, 열심히 글을 써서, 내년에 어떤 식으로든지 성과가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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