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그랬을까 (1)

by 그래이스

회사에서 열심히 퇴근 준비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알고 지내는 한국인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어디냐, 뭐하냐, 친구랑 어디 술집에 있는데 오지 않겠냐'라고 묻길래 그냥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만나자고 연락한 건 줄로만 알았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끔 이뤄지는 안부 연락 같은 거쯤으로 생각하고, 피곤해서 집에 가야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금요일도 아니었기에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ㅇㅇ가 죽었어'


이 믿기지 않는 말에 당장 전화를 걸어 '너는 무슨 이런 장난을 치냐'며 동생을 혼냈다. 실없는 농담마저 진지하게 하고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이민 와서 살면서, 한국에서 산 한국인들보다 더 예의 바른 그 동생이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불안한 마음에 욕까지 해대며 동생을 나무랐다. 제발 내 생각이 틀렸기를, 사실 그 아이도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나를 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하는 말이었기를, 술을 먹고 너무 취해서 그냥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기를..

동생이 대답하기 전까지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야. ㅇㅇ가 죽었어. 그래서 XX랑 술 마시고 있어. 올 수 있으면 와.'


전화를 끊고 급하게 회사를 나왔다. 술집까지 가는 지하철 안, 그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거짓말이길 바라는 마음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가게에 도착하면 그 아이도 함께 앉아 있기를 빌고 또 빌었지만, 도착해보니 정말로 아는 동생과 그 친구만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구들 여러 무리가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 만나 종종 어울리고, 알고 보니 내가 예전에 알던 한국 친구들과도 아는 사이었어서 더 반가운 마음에 가끔 문자로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초대해 함께 어울린 적도 있었는데, 그 이후로 내가 그 무리의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 않게 되면서 이 동생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조만간 한 번 보자, 술 한잔 하자'는 연락만 주고받았을 뿐,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듣고, 힘이 되어 주고 응원이 되어줄 만한 대화는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었다.


핸드폰에서 마지막으로 대화했던 기록을 찾았다.

몇 개월 전 갑자기 그 아이가 '누나' 하고 문자를 보냈고 나는 '응?'이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 이후 답장은 없었다.


그 아이는...

왜 나를 불렀을까. 나에게 하려던 말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무엇이 그 아이를 허공에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나는...

왜 '왜 불렀느냐'라고 한 번 더 묻지 않았을까. 한 번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까.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 컸고, 다른 형제도 없이 혼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국으로 돌아가지도, 이곳에 남을 수도 없었던 그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주는 아니어도 고된 타지 생활에 지치고 힘들고 외로운 마음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때마다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한국 방문 계획은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 되었는데, 그 아이에겐 그런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을 가던, 이 곳에 남던, 그 어디에 가서 살던 그 아이가 있는 곳은 더 이상 그 아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행동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