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열심히 퇴근 준비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알고 지내는 한국인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어디냐, 뭐하냐, 친구랑 어디 술집에 있는데 오지 않겠냐'라고 묻길래 그냥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만나자고 연락한 건 줄로만 알았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끔 이뤄지는 안부 연락 같은 거쯤으로 생각하고, 피곤해서 집에 가야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금요일도 아니었기에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ㅇㅇ가 죽었어'
이 믿기지 않는 말에 당장 전화를 걸어 '너는 무슨 이런 장난을 치냐'며 동생을 혼냈다. 실없는 농담마저 진지하게 하고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이민 와서 살면서, 한국에서 산 한국인들보다 더 예의 바른 그 동생이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불안한 마음에 욕까지 해대며 동생을 나무랐다. 제발 내 생각이 틀렸기를, 사실 그 아이도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나를 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하는 말이었기를, 술을 먹고 너무 취해서 그냥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기를..
동생이 대답하기 전까지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야. ㅇㅇ가 죽었어. 그래서 XX랑 술 마시고 있어. 올 수 있으면 와.'
전화를 끊고 급하게 회사를 나왔다. 술집까지 가는 지하철 안, 그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거짓말이길 바라는 마음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가게에 도착하면 그 아이도 함께 앉아 있기를 빌고 또 빌었지만, 도착해보니 정말로 아는 동생과 그 친구만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구들 여러 무리가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 만나 종종 어울리고, 알고 보니 내가 예전에 알던 한국 친구들과도 아는 사이었어서 더 반가운 마음에 가끔 문자로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초대해 함께 어울린 적도 있었는데, 그 이후로 내가 그 무리의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 않게 되면서 이 동생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조만간 한 번 보자, 술 한잔 하자'는 연락만 주고받았을 뿐,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듣고, 힘이 되어 주고 응원이 되어줄 만한 대화는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었다.
핸드폰에서 마지막으로 대화했던 기록을 찾았다.
몇 개월 전 갑자기 그 아이가 '누나' 하고 문자를 보냈고 나는 '응?'이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 이후 답장은 없었다.
그 아이는...
왜 나를 불렀을까. 나에게 하려던 말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무엇이 그 아이를 허공에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나는...
왜 '왜 불렀느냐'라고 한 번 더 묻지 않았을까. 한 번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까.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 컸고, 다른 형제도 없이 혼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국으로 돌아가지도, 이곳에 남을 수도 없었던 그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주는 아니어도 고된 타지 생활에 지치고 힘들고 외로운 마음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때마다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한국 방문 계획은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 되었는데, 그 아이에겐 그런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을 가던, 이 곳에 남던, 그 어디에 가서 살던 그 아이가 있는 곳은 더 이상 그 아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