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으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맞은 명절. 사람들이 집으로 와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직 잘 모르는 사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할 만큼 언어 실력이 되지 않았기에 말없이 듣기만 하며 앉아 있었지만 그 어색함이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했었다. 마치 내가 어릴 때부터 봐왔던 외국 영화,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랄까? 언제쯤이면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듣고, 대답도 하고, 농담도 하며 지금처럼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얼마가 걸리더라도 언젠가 그렇게 되면 내가 마치 즐겨 보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조금은 순진한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거짓말처럼 언어 실력도 늘었고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성격도 바뀌었다. 적극적이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원래 성격을 어느 정도 되찾았고 빠른 시간에 이곳 환경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성격엔 역시 한국보다 이곳이 더 잘 맞는다며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그 친구를 함께 아는 다른 친구들은 일이 있어 못 온다고 해 갈지 말지 고민이 많이 됐다. 처음 보는 사람들, 낯선 상황을 매우 두려워하는 성격이라 약속 장소까지 가는 길엔 언제나 극도의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격을 바꾸고 좀 더 사교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이곳에 왔기에 결국 생일 파티에 갔고 하필이면 주인공인 친구와 떨어져 앉게 되었다. 비록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앉아 있었지만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두려움은 점점 사라졌다.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 브런치를 먹으며 이것이 내가 예전에 상상했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나의 모습임을 문득 깨달았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나뿐이었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고, 되려 나 자신이 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브런치가 끝나고 '만나서 반가웠다'며 인사를 나누고 사람들과 헤어졌다. 이 자리에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사람들과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엔 또다시 혼자였다. 마치 영화의 상영시간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 맞는가', '나는 이곳과 어울리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문득 '나는 이곳에서 언제나 외국인이겠구나', '뭘 하던 비주류 집단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막상 이렇게 온몸으로 깨닫고 나니 조금 울적해졌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내 나라에 사는 게 더 나은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은 언제나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쌓이고 쌓여 온 한국음식에 대한 갈망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나를 더욱 울적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향수병일 것이다.
사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정해져 있지 않고, 그 누구도 정할 수 없다. 설사 '신'이란 존재가 나에게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아프리카 ㅇㅇ이란 나라다." 하면 모든 삶을 정리하고 그 나라로 떠나게 될까? 아니다. 어디가 되었던지 간에 내가 있기로 정한 곳이 곧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혹 누군가 "네가 그 나라에 있기로 정하고 거기서 사는 것 자체가 다 신의 뜻이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굳이 따지자면 무교라 잘 모르겠다.
언젠가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란 건 따로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 나이에도 이 도시에 정착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아니면 시기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있어야 할 곳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