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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스 Apr 01. 2019

2-10 입학시험과 합격통보

2장. 왜 캐나다인가?

처음 시험 본 학교는 토론토 북쪽에 있어 상대적으로 덜 가고 싶은 학교였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개통했던 아주 저렴한 통신사를 여전히 쓰고 있었는데, 학교에 도착하자 핸드폰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1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한 학교의 캠퍼스는 굉장히 컸다. 건물 안에서 길을 좀 헤매다가 시험 보는 곳을 겨우 찾아 도착하니 일찍 출발한 덕에 여전히 시간이 충분했다. 바로 영어 독해 시험을 봤는데 한 지문당 3-4개의 문제가 있었고 총 풀어야 하는 문제 수가 꽤 많았다. 정신없이 풀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마지막 지문은 거의 읽지도 못했다. 이후 이 학교의 자체 시험 제도는 폐지되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원하는 학교로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다. 시험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함께 온 어린 여자애가 눈에 띄었다. 정작 아무 생각이 없는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어머니는 시험을 앞둔 딸 옆에서 지극정성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도 들었는데, 본인은 이미 두 번 시험에 떨어지고 이번이 세 번째라며 꼭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제야 나도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시험은 역시나 독해시험 먼저였는데 수능 시험에서 보았던 문제 유형과 비슷했다. 지문이 있고 그에 맞는 답을 보기 4개 중에서 고르면 되었고 다행히 시간제한은 없었다. 시간제한이 없었기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모니터를 불태울 것처럼 노려보았다. 꽤 오랜 시간을 노려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뜻을 유추해 낼 수는 없었다. 마지막 문제까지 모두 풀자 자동으로 점수가 계산되어 나왔다. 독해 점수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들었기에 다음에 있을 시험이 더 걱정이었다. 이후 수학 시험을 봤는데 문제는 '얼마인 물건을 30프로 할인하면 얼마겠느냐'는 식의 문제가 주를 이뤘다. 컴퓨터 내에 있는 계산기를 쓸 수 있어 계산하는 방법만 알면 굳이 직접 계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계산을 하면서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던 나로서는 큰 어려움 없이 다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이후 약간의 쉬는 시간을 갖고 나자 대망의 작문 시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은 컴퓨터로 보기에 키보드를 입력하면 되었고 스펠링이 틀린 단어에는 빨간색을 밑줄이 그어졌지만 맞는 단어를 알려주진 않았다. 세 가지 문제 중에 내가 원하는 문제를 고를 수 있었고 단어 제한은 300자 내외로, 8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시간 절약을 위해 문제를 본 후 바로 시작 버튼을 누르지 말고 무엇을 쓸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충분히 생각한 후에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므로 문제와 함께 준 종이에 필수 단어들과 사용할 문법, 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 세 가지를 정리한 후 시험을 시작했다. 컴퓨터 옆에는 영영사전도 있었는데 원하는 사람은 사전을 찾아봐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빨간 밑줄이 그어진 단어는 다시 써보거나 아니면 아예 지우고 철자를 확실히 아는 단어로 바꾸어 썼다.      


소문에 의하면 이 자체 시험 에세이는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가 채점하므로 문제와 전혀 다른 내용의, 본인이 외운 답변을 써도 합격한다고 하는데 내용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컴퓨터가 단어와 문법들을 확인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써야 합격이다'라는 기준이 없었기에 시험을 보고 나왔지만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쯤 지나 유학원으로부터 두 학교 모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고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데로 풀리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쁘긴 했지만 한국에서 입시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웠고, 기쁘긴 했지만 내가 컬리지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10월 초였고 학교는 1월부터 시작하므로 10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두 달 동안 한국행을 결정했다. 편도가 아닌 캐나다로 다시 돌아오는 왕복 비행기표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간다는 게 이상했다. 이곳에서 학교를 갈 예정이라고 하자 주변에서 내 일처럼 기뻐해 줬다. 토론토에 있는 친구들은 내가 그들과 함께 이곳에서 더 오래 있을 거라는 사실에 기뻐했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네가 지금까지 한 선택 중에 가장 잘 한 선택인 것 같다'라고 할 정도로 축하해 줬다. 나 역시 기쁘긴 했지만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해본 적 없는 내가 과연 컬리지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항상 그래 왔듯이 몸으로 부딪히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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