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혜 Oct 21. 2019

박완서와 김칠두도 걸었던 그 길

생에도 에움길이 있다

지름길의 반대말이 있나 하고 사전을 검색했더니 ‘에움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에워서 돌아가는 길, 에움길.


나는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생의 에움길을 걸어본 사람을 좋아한다.



하는 일 마다 지름길을 피하는 그런 인생도 있다



명민한 소설과 산문으로 큰 사랑을 받은 박완서 작가는 전업주부로 30대를 보내고 마흔에 등단했다. 사자처럼 은발을 휘날리는 시니어 모델 김칠두는 20년 넘게 순대국밥집을 하다 64세에 데뷔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은 나머지 따로 기억의 챕터에 모아둔다. 언제고 꺼내볼 수 있도록.


내 생의 지름길과 에움길이 갈라지는 지점은 고3에 있었다. 늘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고3 갈림길에서 작가가 아니라 도서관을 택했다. 문예창작학과와 문헌정보학과 합격증을 양 손에 저울질하다 문헌정보학과에 입학 등록했다. ‘글쟁이 배 곪는다’는 부모의 만류가 절반, 그리고 ‘책 쓰는 사람이 아니라 책 보는 사람으로 살면 되지’라는 얄팍한 마음 절반으로 한 선택이었다.


문헌정보학과는 데이터와 정보조직부터 시작해서 도서관 마케팅과 운영까지 배우는 전문적인 학과다. 나처럼 안일한 마음으로 하는 입학은 사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실례라는 것을, 1학년 1학기 첫 수업에 들어간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그저 유유자적 책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면 도서관학과를 입학할 것이 아니라 중동의 석유 부자를 만나거나 매주 복권을 샀어야 했다. 그런데 난 이국적인 미녀도 아닐뿐더러 복권을 사느니 당장 먹을 수 있는 귤 삼천 원어치를 사는 사람이다. 결국 대학생활 내내 몸만 ‘데이터 프로그래밍’ 같은 수업에 두고 혼은 학교 앞 주점을 배회하며 보냈다. 그나마 2학년 2학기부터 간신히 국문학과를 복수 전공하면서 수업에 정을 붙일 수 있었다.



안 맞는 일이라 그렇게 답답했을까. 가끔 체기가 몰려왔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생계가 급했다.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내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빠르게 소속되어야 했다. 쓰는 삶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급하게 취업했다. 대학의 행정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학교의 사서가 되었다가 다시 다른 대학의 행정실로 자리를 옮겼다. 매일 서류를 수합하고 공문을 쓰고 고치는 것으로 방값을 내고 카드대금을 치렀다.


한 글자도 쓰지 않고 몇 개월을 보내는 일이 허다했다. 분명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데도 한 번씩 걷잡을 수 없게 마음이 허했다. 나름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싶어 월급을 바쳐가며 관광경영을 배우는 특수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 역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그렇게 20대를 돈 버는 사이사이 고민 속에서 흘려보냈다.


서른이 되면서는 굵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B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제주도에 정착했다. B는 발령 난 직장인으로, 나는 날백수로 제주에 내려갔다. 제주에서 새롭게 직장을 구해야 했는데 관광경영을 배웠으니 제주의 관광업에 도전해야 하나, 아니면 대학의 행정직을 다시 노려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매일 구직 사이트를 보며 한숨짓던 나에게 B가 말했다. “왜 지난 경력만 가지고 구직을 하는 거야? 어차피 넌 제주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잖아.”



제주에서 커리어 새로고침. 실패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날백수였으니까.



그 말 한마디에 희한한 용기가 생겼다. 구직 사이트에서 생전 클릭해본 적도 없는 카테고리를 누르기 시작했다. 방송, 작가, 라디오, 기자...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공고가 나지 않아 원고를 쓰거나 기사를 쓰는 범주의 직군을 모조리 훑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면접을 보다가 한 지역 인터넷 신문사의 기자로 합격했다. 서른에 기자가 됐다.


기자로 산 1년의 이야기는 향후 다른 글로 풀어내려 한다. (어마 무시한 삽질과 찌질의 역사) 1년을 버티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만 절절하게 느끼고 퇴사했다. 다시 구직 사이트를 방랑했지만 라디오 작가 공고는 나지 않았다. 결국 한 스타트업 회사의 홍보팀에 지원했다. 면접 보는 내내 느낌이 괜찮더니 합격 연락이 왔다.


합격 연락을 받고 며칠 뒤, 청소기를 돌리는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여기 XXX 방송국입니다. 시사 라디오 작가를 뽑고 있습니다. 기자 경력이 좀 있는 분을 찾고 있습니다. 추천을 받아 연락드립니다.” 혹시 피싱이 아닌가 싶었는데 대화 내용이 구체적이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를 짜내어 “30분 뒤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인생 가장 숨 막히는 30분이었다. 그렇게 찾을 때는 없더니만 스타트업 회사 홍보팀에 합격하고 나니 짠하고 나타나는 ‘라디오 작가’로의 길이라니. 나는 청소기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발만 구르다가 B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B는 홍보팀 합격을 알리던 심드렁한 내 모습과 라디오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속사포처럼 전하는 내 모습의 온도차가 극명하다는 것을 짚었다. B는 대체로 실없지만 가끔 예리하다. 결국 나는 30분 뒤 방송국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면접 약속을 잡았다. 서른 한살의 가을, ‘에움길’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