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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Oct 24. 2019

라디오 작가의 '코어 메모리'

온에어 버튼에 불이 들어오던 5년 전 가을


주인공 라일리의 메모리를 바라보는 기쁨이. 노란색은 기쁨, 파란색은 슬픔, 빨간색은 분노를 나타낸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는 ‘코어 메모리’라는 개념이 나온다. 코어 메모리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그것이 기쁨이든, 안타까움이든)을 의미하는데, 10대 소녀 주인공 라일리는 부모님과 행복하게 스케이팅 한 기억과 하키 대회에서 승리의 주역이 되었던 일들을 코어 메모리로 가지고 있다. 참고로 코어 메모리는 영화 전개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


픽사는 늘 쉽게 휘발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내게 영화는 두 종류로 나뉜다. 보는 동안에는 즐겁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상쾌하게 줄거리 대부분을 까먹는 영화가 있고, 여운이 남아 두고두고 반추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그걸 무비냐 시네마냐라고도 했다던데(특히 마블 영화를 두고) 그렇다면 내게 인사이드 아웃은 ‘시네마’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좋은 영화를 본 뒤 나누는 대화는 후식과 같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동행과 카페라도 들어가 이야길 나누며 여운을 음미한다. ‘혼영’을 했다면 영화 평점 어플에 접속 해 익명의 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인사이드 아웃을 본 뒤에는 B와 각자의 ‘코어 메모리’를 이야기했다. B는 나와 만나게 된 것을 인생의 코어 메모리 가운데 하나로 손꼽았다. 처세에 능한 남자다.


내 차례가 됐다. “30대에 만든 코어 메모리가 뭐야?” 그 질문을 듣는데 자연스럽게 눈앞에 라디오 부스가 그려진다. 온에어 버튼에 불이 들어오던 5년 전의 가을.



라디오 콘솔 앞에 처음 앉던 날


라디오라는 코어 메모리


사서부터 대학의 행정직원을 지나 2014년, 31살에 한 방송국의 라디오 작가가 되었다. 첫 출근날부터 긴장할 틈도 없었다. 매일 진행되는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은 그날그날 출연자 섭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쁘게 인터뷰 대상자를 섭외하고 질문지를 작성해서 보냈다. 섭외와 질문지 구성이 마무리되자마자 오프닝 원고에 매달렸다. 모든 방송분을 수합하고, 오프닝 원고까지 선배에게 체크받고 나니 방송 한 시간 전이었다.


그때부터는 전화 연결이 예정된 출연자들 확인 연락을 돌리고 방송에 나갈 음향을 챙겼다. 모든 과정이 손에 익지 않아 부산하기만 하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간신히 준비를 끝내니 방송 스탠바이를 할 때였다.


그제야 주변을 볼 틈이 생겼다. 눈앞의 라디오 부스에는 진행자 겸 연출자 선배가 입을 풀며 대기하고 있었다. 옆에는 엔지니어 선배와 방송 전체 흐름을 봐줄 선배가 앉아 있었다. 세 명 모두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먹은 것도 없는데 자꾸 입이 말라 마른침을 삼켰다.


생방송 5초 전, “지금 시각은 오후 6시입니다.” 아나운서의 또렷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스탠바이... 5,4,3,2,1. 라디오 부스 위 잠자던 온에어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오프닝 시그널이 잠시 흐르고 마이크가 올라갔다. 진행자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글이 말이 되어 생동했다.


내가 쓴 오프닝 멘트가 주파수를 타고 세상 어딘가에 닿다니 손에 땀이 솟았다. 경이롭고 두려웠다. 오늘을 기점으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리라는 아득한 예감이 들었다. 그날 내 ‘코어 메모리’가 하나 더 생겼다.




이제 짠내 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첫 방송국에서는 2년 2개월을 일했다. B에게 일이 생겨 이사를 해야 하지 않았더라면 더 오래 일했을 것이다. 프로그램의 음향을 준비한다거나 출연자를 관리하는 일에는 점차 능숙해졌지만 오프닝 원고를 쓰거나 인터뷰 대상자를 위한 질문지를 준비하는 일에는 요령이라는 게 없었다. 매일 새롭게 어려웠다. 특히 오프닝은 아무런 사유 없이 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구성할 시간을 만들어 내고 머리를 쥐어짰다. 잘 쓰이는 날도 있고, 못 쓰이는 날도 있었지만 함부로 쓴 날은 없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온에어 버튼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에는 늘 숨을 죽였다. 택시 안에서, 시장통에서, 퇴근 준비를 하며, 혹은 아이를 돌보며 듣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방송이 끝나면 맥이 풀리고 허기가 몰려왔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몸과 마음을 쓰는 것이 아깝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첫 온에어 불이 켜지던 순간, 가능하면 오래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주 번민하고 가끔 항의도 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라는 문장으로 눙치고 넘길 수 없는 일들이 생겼다. 많이 걸려 넘어졌다. 프리랜서 방송 작가라는 일을 꽃길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매일 상상 이상의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어떤 상처는 그냥 밥과 함께 꿀꺽 삼켰지만, 끝까지 삼켜지지 않는 상처도 있었다. 그래도 라디오 작가로 살겠다는 결정을 후회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 무섭다.


이제 노랗고 파랗고 빨간, 내 코어 메모리들을 좀 더 꺼내 놓는다. 단 맛은 그다지 없고 쓰고 맵고 짠내 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소리 내어 말하고, 목청을 키워 말하고, 그보다 더 큰소리로 말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실은 전혀 크지 않은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누군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데버라 리비, <알고 싶지 않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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