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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Mar 28. 2022

내가 제주도에 살고 싶은 이유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소리

인생이 허망하다 생각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치유받고 싶어 떠난 그곳에서 맞이한 한 사건은 나의 허망한 인생을 급기야 절망으로 바꾸었다. 그전까지의 내 마음이 그저 공허한 정도였다면, 그 사건을 겪은 후에는 갈기갈기 찢긴 기분이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도착한 곳은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한 카페. 꽤나 더운 날이었지만 바다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 밖에 놓인 자리로 향했다.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르르-쏴-차르르-쏴-


너무도 선명하게 들리는 파도소리. 다른 사람들의 웃음도 대화도 들리지 않았다.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건 파도 소리뿐이었다. 어느새 평온해졌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 모든 게 멈추면 좋겠다.


오래전에 본 시트콤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는 대사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진지했다. 그 자리를 떠나 파도소리가 덮어주던 마음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았.


서울로 돌아와 그때를 그리워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창을 열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다가 우연히 그 파도소리를 만났다. 신기하고 행복했다. 우리 집엔 바다가 없다. 빗소리였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놀러 다니지 못해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을 가는데 비 소식이 있으면 짜증이 난다는 사람이 많다. 나는 다르다. 비에 옷이 젖고 찝찝한 기분, 무겁고 귀찮은 우산이야 물론 나도 싫다. 다만, 투둑 투둑-내리는 빗소리가 제주바다의 파도처럼 내 마음을 덮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니까,

그 어떤 불편함마저 가려버리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다.


소확행이란 단어가 한참 유행이던 시기 나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니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 제주도 한옥집 대청마루에 누워 푸른 자연을 마주한 채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깨어보니 강아지가 내 품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방안의 가족들은 부침개를 해 먹자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정말 소소한 장면.


파도소리와 빗소리가 있는 제주도에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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