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 요소인 감정을 인정하고 적절히 처리하기
나만의 '인생 클레임 처리 매뉴얼' 2부는 관리 지표인 '자존감'을 상승시키고 지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첫 순서로 상처를 마주하고 치료하며 결핍 욕구를 채웠다.
이에 자존감 '상승'에 앞서 겨우 올려둔 자존감을 먼저 '지키는 것'부터 필요했고 이를 방해하는 다른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감정에 지배될 때마다 나는 자책하고 나를 하대하는 기분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 찾기
깊고 짧은 무기력을 느꼈을 때는 이유를 찾기 이전에 일단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당연히 그에 따라 하루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고 다음 날에는 내 기준 비생산적인 행동인 웹툰이나 드라마 보기 등을 했다.
그러나 얕고 긴 무기력을 겪게 되자 '쉼'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활기가 넘쳐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픈 욕구는 없었기 때문에 '대체 왜! 왜! 왜!'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래서 이 상황이 신체 증상이라면 어떨지 가정해 보았다.
만약 갑자기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하면 왜 아픈지 당연히 궁금해질 것이다.
그럼 멍이 들어서인지, 피부에 상처가 생겨서 인지, 뼈에 금이 가서인지 알고 싶을 것이고 당연히 손가락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게 될 것이다.
살핀 결과 멍이 들었다면 대체 어디에 부딪힌 것인지, 그리고 부딪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도출해낼 수 있다.
얕은 무기력이 왜 생긴 건지 알기 위해 내 감정을 면밀히 살펴 찾아보기로 했다.
감정 마주하기
마주한 첫 번째 감정은 실망감이었다.
우울증을 앓기 전부터 앓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비난은 물론 단 한 번의 비판도 없이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나에게는 그런 소중한 친구가 있다.
새 비전을 찾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 의지했는지, 돌이켜보니 자꾸만 그 친구에게 기획안을 보여주고 의견을 묻고 있었다.
재미있다며 나보다 더 열심히 피드백을 준 덕에 날이 갈수록 기획안은 견고 해지는 반면 내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던 듯하다.
우연히 내 기획과 비슷한, 이미 운영되고 있는 채널을 보게 되었고 내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이 파스스 사라지는 걸 느껴 바로 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맛집은 서울에도 있고 제주도에도 있어. 그 프로그램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너의 프로그램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거야. 걱정 마. 어서 다시 우울의 늪에서 튕겨 나와줘!"
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을 했다.
사실 그 채널을 봤을 때 잠시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내 프로그램은 분명 차별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친구에게 연락한 것은 결국 의지하기 때문이었고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게 나에 대한 '실망감'이 있었다는 걸 제대로 알아챘다.
분명 나는 '인생 클레임 처리 매뉴얼'을 제작하며 나에게 '의존적 성향'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렇게 하지 않으려 꽤나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친구에게 의존하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아주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는데 이미 운영 중인 그 프로그램을 이야기하고 들은 응원 덕에 의존적 성향이 여전히 남아있는 나에게 계속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마주한 감정은 창피함이었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잘하는 건 아닌데 좋아하기만 한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신나게 이야기하고 나면 속은 시원하지만 실수한 건 없는지, 말이 너무 많지는 않았는지, 제대로 전달은 됐을지 등을 생각하느라 진이 빠진다.
그렇다고 말을 의도적으로 아끼면, 대화가 끝난 후 하고 싶었던 말을 못 해 가슴이 답답하다.
최근 나는 그 두 가지를 다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함께 꿈꾸는 다른 이들과 모여 첫 미팅을 가졌다.
초반부에는 여러 가지 사항을 파악하는 시간도 필요했고 의견을 마음껏 피력할 용기가 없기도 해서 여러 이유로 말을 아꼈다.
중반부를 지나자 아이디어와 의견이 계속 떠올랐고 결국 많은 말을 또 내뱉었다.
미팅이 끝난 직후에는 일이 잘 될 것 같은 기분에 들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했던 말을 떠올리며 되짚어보는 행동은 또 나타났다.
말을 하는 과정에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주춤거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보이기도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왠지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오해를 산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고 말을 많이 한 것도 싫었다.
그렇게 창피함을 느끼고 있었다.
인정, 수긍하고 처리하기
의존적 성향을 가지고 살아온 기간은 최소 20년은 되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이제 막 시작한 일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9년간 계속해왔던 업무에 있어서도 우울증으로 인해 덜덜 떨고 하려는 말을 잊어버리곤 했었던, 그 기간도 최소 3년 정도는 될 것이다.
반면 그 사실들을 알고 개선하려고 노력한지는 불과 2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단 한순간에 나아질 일이었다면 내가 글을 쓰고 프로그램을 기획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나는 내게 실망을 했고 창피해했다.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그 괴리가 매우 크다.
이번의 경험은 그 간격을 줄여준 기회라 믿고 실망감을 인정하고 다시 의존적 성향과 긴장감에서 나오는 실수를 줄이고자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아론 벡의 인지치료 이론]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건에 접하면 자동적으로 어떤 생각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를 자동적 사고라 한다. 만일 그것이 부정적인 내용이라면 심리적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심리적 문제를 경험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자각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3가지 과제가 있다.
*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를 찾아내어 적절한 적응적 사고로 대치한다.
* 사고 과정에서의 인지적 오류를 찾아내어 수정한다.
*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와 인지적 오류의 기저를 이루는 근원적인 역기능적 인지 도식을 찾아내어 그 내용을 보다 융통성 있고 현실적인 것으로 바꾼다.
- 심리상담사 2급 교안 中-
아론 백의 인지치료 이론에 따르면, 우울증을 앓기 전후의 내 삶은 어떤 사건을 접하면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로 이어지도록 고착화시켰을 것이다.
즉, 내게는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가 없고 당연히 하대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인지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긍정적인 자동적 사고로 이어지도록 꾸준히 연습하면 된다.
감정에 지배되지 않도록 감정과 나를 분리해서 살펴보고 인정, 수긍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