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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숲풀 May 29. 2022

굴러온 희망이 박힌 허기를 뺐을 때

현실보다 희망이 나를 살게 하는 기분

화가 나고 우울하면 그렇게 맵거나 단 음식을 찾았었다.

좋지 않은 기분을, 매워서 나는 화가 짓눌러 버리기라도 하는 걸까?

가짜일지언정, 달아서 생기는 행복이 우울을 가려주기라도 한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 음식들은 잠시나마 나쁜 기분을 잊게 해 주었다.

그러나 그 잠시가 지나면 이내 그 음식들은 '늘어난 체중'이라는 죄책감과 함께 음식에 굴복하고 만 듯한 묘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요즘의 나는 그런 음식들을 찾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불안과 걱정들은 여전히 내 주변에 도사리고 있음에도 달라진 이유가 뭘까?

물론 찾아야 할 이유인 괴롭히는 직장 상사, 결코 밝지 않은 미래, 심각한 재정난 등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생일을 맞이하면서 그 진짜 답을 찾은 듯하다.




내게 있어 생일은 늘 특별한 날이었다.

아니, 특별해야 하는 날이었다.

사람에 따라 별 신경 쓰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큰 의미였다.

고가의 선물을 받고 깜짝 파티를 누군가가 해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크리스마스나 명절 같은 날과 달리, 나만의 고유한 날이라는 게 좋았다.

또한 그런 나의 날을 기억해 축하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그렇게 의미를 두다 보니 케이크에 초를 켜고 부는 것,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생일 축하의 그 무엇이 없으면 꽤나 섭섭한 기분이 들 것 같아 자의든 타의든 늘 챙겼다.


올해는 달랐다.

생일을 앞두고 가족들이 무엇을 가지고 싶고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지만 '괜찮은 척'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들의 축하에 행복하며 감사했고 생일을 나만의 고유한 날로 생각하는 것은 같다.

하지만 케이크가 없어도, 평소와 다른 음식을 먹지 않아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도 내가, 가족이, 그리고 지인들이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희망 덕분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은 건 번아웃이고, 우울증을 앓게 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 된 줄 알았을 때는 그런 팍팍한 삶이니 생일만큼은 특별해야 했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케이크의 초를 부는 것,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축하'의 의미가 명확히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갈망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정말 오랜만에 '돈을 빨리, 그리고 많이 벌어서 가족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라는 남의 만족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한 삶의 목표와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 만족감이 곧 내 목표를 이루는 데 발판이 되고 그로 인한 행복감이 목표로 나를 무사히 데려다줄 것을 안다.

또한 바로 그것들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하여 우리 가족도 함께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불안도 분명 여전히 존재하지만 불안에 내가 먹혀버리는 일은 없다.

이왕 굴러온, 박힌 허기를 빼버린 희망이, 부디 견고히 박혀 움직이지 않도록 잊지 않고 노력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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