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했다.
중학생 때 육상을 했다. 사실 굉장히 짧은 시간 운동을 했었고, 동네 1200 종목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딴 것이 전부지만, 나의 다부진 덩치에 대한 설명에 좋은 레퍼런스가 되다 보니 이제 어느새 나라는 인물의 브랜딩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몇몇 시즌을 제외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 마저도 특별한 이유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엄마가 아파 장녀인 내가 집을 돌보고 간병도 해야 했던 시절, 하필이면 새벽까지 야근해야 할 정도로 바쁜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살기 위해) 새벽에 PT를 시작했던 것이 있다. 육상선수 출신이라는 다소 부풀려진 별명을 가진 사람 치고는, 어지간한 이유 없이 운동에 열심은 아닌 편이었다.
복직을 하고 한 달. 내 스스로 느낄 정도로 집에 오면 표정이 없었다. 회사 업무를 따라가다 한참 풀가동한 나의 두뇌는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이나 사무적인 태도였고, 녹초가 된 몸에 자연스레 정서도 메말랐다. 말도 많고 감정이 풍부하여 늘 에너지가 있던 내가, 나의 가장 많은 정성을 들이고 싶은 나무와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에 가장 녹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말하듯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것이 맞다. 드디어 적당한 동기를 만나 회사 지하에 헬스장을 등록했다. 사실 출산 후 6개월 차부터 필라테스를 다니고 있었지만, 코로나의 정도가 심해지면서 두 달 정도 어떤 운동도 하지 않았던 터라, 몸도 많이 답답했는데 타이밍이 좋았다.
휴직 중에, 평소 동경하는 워킹맘 상무님이 외국계 기업 상무에, 딸과의 굉장한 유대감에, 본인의 취미 등으로 잡지에 실리기도 하면서 매일같이 필라테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기암을 토했던 기억이 있다. 나와 다른 시간을 사는 분 아닐까. 적어도 하루가 37시간은 돼야 가능할 얘기 같았다. 휴직 중에도 애 보다 보면 하루가 짧고, 이미 에너지가 고갈되어 밀린 잠이라도 자야 하는데 어떻게 자기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길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워킹맘이 되고 나니, 자기 관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아니, 오히려 일정한 스케줄로 움직이다 보니 충분히 시간을 만들 수 있어, 워킹맘과 자기 관리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도 생각 들었다. 운동을 시작하니, 나무가 자고 있을 때 글쓰기 시간도 생겨 정서적으로도 조금씩 더 안정되어갔다. 나보다 일 년은 먼저 워킹 파파 생활을 하던 남편이 늘 운동하고 싶다고 입에 달고 지내다가 집에 철봉이라도 들여 턱걸이를 시작하고 맨손운동을 부지런히 하는 모습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운동은 특히 자기 성취감도 있다. 처음에는 한두 개 겨우 올라가던 남편은 이제 열개씩 몇 세트를 거뜬히 올라간다.
코로나 시대에 워킹맘이 되었다. 같은 세대를 사는 사람들 사이에선 전무했던 시대의 변화 중, 가장 불행할 것 같은 조합이었다. 코로나에, 출산에, 육아에, 직장까지 다니는 조합. 오며 가며 어른이고 친구들이고 다 한 마디씩 위로와 잔소리를 건네는 조합. 애기가 마스크까지 해야 하고 답답하겠다. 집에만 있으려니 안되었다. 너무 어린아이인데 어린이집이라니. 아이가 세 돌 될 때까지는 엄마가 꼭 필요한데. 등등. 오지랖이라며 그런 걱정들을 차단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막상 복직을 하고 나니 나만의 중심이 잡혔고, 운동까지 시작하니 의외로 여유로워졌다. 집에 돌아와 나무에게 집중하며 시간 보내는 것이 늘었고, 매사에 미안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잠식해버리지 않도록 적당한 연차 활용 등 삶에 장치들을 만들어 두었다. 물론 물리적으로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나무와 아침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도 체력을 유지하여 기분 좋은 에너지로 다시 육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