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읍 뒤편 산너머에서 짙은 회색 연기가 크게 피어오르는 게 심상치 않았다. 건조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연일 발효될 정도로 산불에 취약한데.. 곧 소방헬기들이 산불진화작업에 투입되는 것이 보이고, 최근 산불을 끄기 위한 헬기 조종 중에 돌아가신 유희 아버님 때문인지 더 긴장되었다. 장대하고 위엄 있는 우리의 산이 저리 타들어가는데 헬기는 너무도 조그매 보이고 물을 채우고 돌아오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길게 느껴졌다.
그림이 필요한가
그저 조그만 기원을 담아 그리고 싶었다. 매번 삶의 현장에서 하게 되는 질문. 이러할 때 그림이 필요한가. 자기만족으로 인한 행위는 아닐까. 필라델피아에서 벽화를 할 때, 폐허가 되어 엉망진창인 내부를 뜯어고치는 것이 외벽을 작품으로 꾸미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나의 그리는 행위가 사람을 돕는 데 사용된다 자랑스러워하였으나 실은 내 즐거움을 위함이요, 내 생존의 방법일 뿐이지 않나. 숱한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힘들어하였다.
<산불 소방헬기 물 공급> 종이에 먹, 25 x 23cm, 2016
산 너머 멀리서의 엄청난 사건을 바라보던 때 오히려 마음 아파함이 강하고, 실제 그리기 시작하니 그림 자체에 몰두하게 되고 호기심과 멋진 그림을 만들어내는 재미에 빠지는 날 보게 된다. 인간이란 이다지도 모순된다. 결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두 개가, 생각 두 개가, 행위 두 개가 동시에 움직여 이 한순간을 살아낸다. 흘러 지나가는 시간 속에 모순덩어리의 내가 그럼에도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이 모든 옳고 그름의 혼돈을 덮어 안는 애정, 주의 사랑이 근본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이 시간 선택하여 만드는 결과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주께서 주의 마음에서 시작된 모든 것을 선으로 책임져 이끄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