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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영 Grace H Jung Jun 17. 2023

화가의 양구일기 6_어떤 가치로 있게 될까

양구 정림리 '마을' 스케치

2016년 4월 2-3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11-12일 차.


<정림리> 종이에 먹, 16 x 21.5cm, 2016


밭일하시는 할아버지.

땅에 거름을 주는 것일까. 포대가 쌓여있고 검은흙이 덮여 나간다. 내가 그리고 있으니 무얼 하나 잠시 쳐다보시다가 밭일에 집중하신다. 나도 그리는데 열중하느라 비료인 건지, 쇠갈쿠리로 땅을 긁는 이유며 세세히 물을 힘이 없었다. 할아버지도 나도 하루 해가 져갈 시간. 종일 일해 피곤하긴 매한가지인 듯했다.


드로잉,
기록 이상의 가치



이렇게 마을에서 보는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고 있으면 무언가 내가 엮어낼 큰 흐름이 보일까. 되도록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담으려는 노력이 기록 이상의 가치로 남게 될까. 밀레도, 고호도, 김홍도도 일상이자 기록이자 더 깊은 차원의 감동과 이야기를 주는데 내 이런 매일의 드로잉은 후에 어떤 가치로 있게 될까.


_2016/04/02 드로잉 노트: 양구 정림리




<비 오는 날 너분동 농장> 종이에 먹, 21.5 x 16cm, 2016


내가 다가가니 소들이 내게 눈을 마주치며 다가온다. 비가 꽤 와서 스케치북이 젖어가니 더 이상 그리기 어려워 한 마리만을 담았다. 결국은 도축을 위해 키워지는 이들에게 그저 인간의 죄악이 미안할 뿐이다. 좀 어린 소들은 장난을 치는 것인지 몸을 부딪히며 부산스럽다. 이 아이는.. 어느 정도 경계의 빛으로.


하루에 조금씩 더 나아가 마을의 이곳저곳을 보고 있다. 눈에 담는 모든 것을 그려내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인가. 길 가의 이름 모를 나무 대들도, 커다란 마치 고호의 나무처럼 될 성싶은 저 나무도, 경계와 호기심으로 짖어대는 시골의 큰 개들도, 소들 앞으로 유유히 걸어가는 고양이도, 비안개에 덮여 신비스러운 저 산들도, 알 길이 없는 철책 너머의 부대도. 양구 이어서인가 아니면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내 시간이 되어서인가. 이토록 그리고 또 그리고 싶으니.


_2016/04/03 드로잉 노트: 비 오는 날 너분동 농장




<양구 고양이와 강아지> 종이에 먹, 각 25 x 23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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