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때 놀러 온 시누이가 우리 집 쿠키를 보곤 매우 부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오는 손님에게 꼬리를 흔들며 상냥하게 맞이하는 까망 눈의 요정 같은 쿠키를 보고 개를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쿠키는 또 항상 웃으며 손님맞이를 하니까.
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우리 남편에게 쿠키를 구한 경로와 방법에 대해 자세히 묻고 도움을 받으려 했고
우리는 임시보호견이나 유기견 센터의 아가를 추천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 사실 유기견 입양은 먼 얘기다.
결국은 동물 병원에서 거금을 주고 푸들 한 마리를 입양했다 들었다.
이후, 우리 집에 제사가 있던 어느 날,그녀는그 개를 데리고 뒤늦게 놀러온 일이 있다.
나는 전생에 개였을까 생각할 정도로 개를 좋아했다. 어릴 때는 떠돌이 개에게 조차달려들어 입을 맞추고 껴안아서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달려들어 만지고 뽀뽀하는 낯선 아이를 어떻게 왕! 하고 물어버린 개가 한 마리도 없었는지 아찔하고 신기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키우던 우리 개가 남을 무는 것을 경험한 이후 큰 충격을 받아 예전처럼 아무 개나 만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개는 이 개대로, 저 개는 저 개대로 너무 예쁘다.
그런데 시누이의 개는 주둥이가 많이 튀어나온 흰색 푸들인데 (내 취향은 아니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사나워서 정을 주기가 어려웠다.
못생겨도 사람을 잘 따르면 털북숭이들은 환영받고 사랑받기 나름인데 '저런 개를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샀다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귀신같이 읽었는지 내가 예의상 손을 내밀어 안녕?~하자 으르렁 거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눈을 치뜨고 침까지 흘리며 신음소리를 내는 폼이 조금만 더 가까이 갔다가는 물어뜯을 기세였다.
어머!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쿠키 역시 뭣도 모르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다가갔다가 크게 입질을 당하고 돌아서야 했다. 약이 바짝 올라 멍멍! 하며 짖는 쿠키를 달래며 못생긴 개는 성격도 못됐나...(*못 생겼다는 것도 시누이의 개였던 데다가 물리기까지 할 것 같으니 매우 감정이 상한 주관적 표현이다) 하고는 마음을 접었는데 사고는 이후에 일어났다.
아아악!! 하는 비명 소리에 놀라 가보니 누나 개라고 신경을 쓰던 우리 남편이 이쁘다 이쁘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굳이 개를 안으려다가 결국 손을 물린 것이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우리 남편은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인데 이 개가 우리 밥줄에 지장을 주면 어쩌려고!!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시누도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개를 어떻게 혼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을 무는 개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쏙 빠지게 단단히 혼내고 훈련을 받아서라도 고쳐야 하는데 시누는 개에게 너무 물렀다. 남편도 열이 받아서 손을 감싸 지혈을 하며 못생긴 개가 사납기까지 하다며 씩씩거렸다. 물론 시누이가 돌아간 이후에.
몇 달 후, 시누이가 사정이 생겼다며 우리 집에서 며칠만 그 개를 맡아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탐탁지는 않았지만 보통 강아지가 홀로 주인 없이 오면 사나운 개도 풀이 죽어 얌전하겠지 싶어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쿠키에게도 친구가 생기겠구나 조금 신도 났다.
그런데 웬 걸? 홀로 있음에도 그 개는 어느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으르렁거리며 밥도 물도 안 먹고 달달 떨기만 했다. 순진무구한 쿠키는 그때 그 개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가 왔나 싶어 꼬리를 흔들고 온종일 머슴처럼 그 개를 쫓아다니다가 또 혼줄이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레퍼토리, 약 올라서 짖고 그 개도 짖고 내가 쿠키를 안고 격리시키면 어느새 또 쿠키가 다가가고 두 마리 개가 하루 종일 같은 패턴으로 대치를 했다. 틈만 나면쿠키가 그 개 근처에 가서 눈치를 보고 다가섰다 어퍼커트 당하는 모습에 복창이 터질 정도였다.
(쿠키의 끊임없는 도전은 이제 보니 고양이의 마음도 열어 젖혔는데이 개는 끝내...)
나를 더 화나게 한 건 아이들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 쿠키 수준과 다름 없는 아이들은 그 개에게 손을 내밀고 간식도 주고 사료도 주며 근처를 맴돌았지만 시누이의 개는 무차별 공격성을 드러냈다.
이쯤 되니 시집에서 키우는 개마저도 시집살이를 시키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개도 시누이가 키우면 시집식구가 되나 보다, 쓴웃음이 다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오랜 시간 그녀에게 알게 모르게 시집살이를 당한 내 맘에 앙금이 있어서였겠지만 어쨌든 그땐 그랬다.
결국 나는 시누이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도저히 못 보겠어요... 죄송해요. 저는 개가 다 우리 쿠키 같을 줄 알았는데 너무 사나워요. 쿠키며 애들도 다가가면 물려고만 하고 밥도 물도 안 먹어서 신경도 쓰이고요"
"안 먹으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되잖아." 남의 집에 사나운 개를 맡긴 그녀의 해결법은 참으로 간단했다.
나야 무시하면 그만이라 쳐도 쿠키와 아이들이 내버려 두냐 그 말이다! 결국 쿠키와 애들에게 화를 내게 되고 집 안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이내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든 개를 달래서 데리고 있으라"는 것이 통화의 요지.
시어머니는 당신 딸과 딸의 강아지를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화를 했다.
너희 강아지 쿠키를 가두던지 해서라도 잘 데리고 있으라고.
결국 시어머니의 전화가 내 안에 돌아다니던 시집 트라우마의 지뢰를 밟아 터뜨렸다.
그 개는 더 이상 시누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를 달달 볶는 '그냥 시집식구 중 하나'였다.
결국 시누이와의 합의 끝에 다음날, 그 개는 그 집 앞의 단골 동물병원에 맡겨지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아직도 그 강아지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 지금껏 본 일은 없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집에 잠시 들르는 시누이가 언제나 즐겁게 손님 맞이를하는 쿠키를 쓰다듬으며 "너는 어쩜 이렇게 성격이 좋고 예쁘니" 부러움을 담아 내뱉은 혼잣말을 들으며 짐작만 할 뿐이다.
그 강아지는 왜 그렇게 사나울까?
데즈먼드 모리스의 'DOG WATCHING' 중 몇몇 개들은 왜 관리하기 어려울까? 중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못된 애완견은 주인이 선뜻 받아들이긴 어렵겠지만 보통은 개가 그들 무리의 지배적 구성원이 되게끔 용인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기르는 개 역시 늑대처럼 지배적 위치에 오르고자 힘쓰는데 개를 제 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면 주인과 맞서려 하고 그 과정에서 한두 차례 이기게 되면 나중엔 진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됐다고 결론을 내버린다.*
자식들도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안하무인으로 자라고 남에게도 피해를 주게 마련이다. 자식이나 애완견이나 혼낼 땐 대차게 혼내고 사랑을 줄 땐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PS 내가 그 일이 있던 당시 시누견도 있더라며 우스갯소리로 언니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시누견이라는 '누명'을 씌우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 때의 삐딱한 저의 시선은삐딱한 저의 마음 탓도 있었을 겁니다. 개는 언제나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