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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Oct 01. 2021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쿠키앤크림이가 넝쿨째 굴러왔을까

 쿠키는 내 맘을 읽는다. 내가 신이 나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깔깔거리면 녀석도 밝은 표정으로 날뛰며 인형을 물고 장난을 치거나 짖는다. 하지만, 내가 울고 있거나 힘없이 누워있을 때는 그냥 가만히 내 옆에 앉아 턱을 괴고 엎드려있다. 따뜻한 체온과 보드라운 푹신한 털, 그 자체가 힐링이 된다. 고마워서 쓰다듬고 뽀뽀해주면 착하고 까만 눈동자로 내 눈을 지그시 보다가 핥아준다. 엄마 이제 웃어...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지금은 다 늙어서? 평화로운 날이 더 많지만 40대 초 중반엔 남편과 종종 싸웠다. 나는 싸우면 남편이 들어와도 아는 체를 안하고 하던 일을 했다. 그러면 쿠키도 남편에게 딱히 아는 체를 안하고 내 옆에 꼬옥 붙어있다.

집 안 사람들 누가 와도 꼬리 치고 반기는 일이 강아지의 본분이자 본능인데 말이다. 사이가 좋을 때 '자기 왔어?" 하고 뛰어나가기라도 하면 쿠키는 앞장서 나가 잃어버린 가족을 찾은 강아지처럼 남편을 반겼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속을 썩여 혼을 내는데  거칠게 대들기라도 하면 아이들에게도 사납게 짖었다. 참 신기했다. 나의 감정이 강아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


가족들과 맥주 한 잔 할 때,  밥 먹을 때 쿠키는 맘 약한 남편을 공략한다. 평소엔 그다지 친하지 않으면서도 식탁에서만은 유독 남편에게 집착하며 안아달라고 한다. 나에 대한 쿠키의 충성과 사랑이 늘 부러운 남편은 이때야말로 쿠키의 마음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며 몰래몰래 고기 몇 점을 건넨다.(쿠키가 이 사실을  간파한 것이 놀 랍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쿠키는 알러지프리 사료(단백질을 가수 분해해 만든 특이사료)이외의 음식을 먹으면 피부병이 심해져 결국 스테로이드 약을 먹고 바르며 고통을 겪어야 한다. 나와 아이들은 찰나의 기쁨을 주는 간식이 쿠키의 아픔으로 귀결되는 뻔한 결말을 가까이서 봐왔기에 절대 간식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편은 '쿠키의 눈빛이 너무 애절하고 간절해서 마음이 아프다. 얘가 간식 말고 무슨 낙이 있겠냐'는 말로 자꾸 몰래 고기를 준다. 그러나 그 말은 '나도 쿠키 관심 좀 얻어보자'는 이기적인 맘이 깃든 핑계일 뿐임을 안다.

캥거루 아가처럼 아빠품에 폭 안겨있는 쿠키, 저 눈빛을 거부할수없어 간식을 주면 늘 피부병이 도져 고통받는다.제발 그  눈빛 좀 하지마라 ㅠ

밤하늘의 별이 이쁘다 해도 저 눈처럼 반짝이거나 예쁠 수는 없다. 저 눈망울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쿠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면해야만 한다.


온종일 집을 비웠다  돌아온  저녁이면 부엌은 식탁이며 싱크대에 고기 구워 먹은 프라이팬 네 개  밥공기 국공기 앞접시 열 개 수저 젓가락 여덟 벌  열 두개의 컵으로 난장판이 돼있다. 중고등학생들이 엄마 없을 때 차려먹은 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22세와 20살의 다  큰 성인 아이들  둘이 해놓은 짓이다. (*아이들이 대학 가기 전 나는 신사임당 뺨치는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하며 가족들을 돌본 사람이다. 하지만 애들이 다 크니 이젠 밥 먹고 치우는 일쯤은 각자 해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지만...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보다.)

남편은 돈 벌어와, 집에서 밥 안 먹어, 그러니 부엌일은 절대 안 하겠다는 몸짓으로ㅡ 남산만 한 배를 두드리며  티비보거나, 집에 없거나, 아님 배를 안고 코까지 골며 자는데  ㅡ그에게 크게 외칠 말은 없고 (타협이지) 각자 방에서 놀고 있는 20살 넘은  말 만한 애들에게 '처먹었음 설거지도 좀 하라'고  상소리 섞어 가며 꽥꽥 대도  쿠키 앤 크림이만 놀라 숨는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안 할 거야 하고 그냥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은 화낼 힘도 없이 마구 우울하다.  어제 하고 잤어야 했어.  다시 침대로 돌아가 열댓 번 일어났다 앉았다 하다가 결국 노래를 크게 켜고 수세미를 잡는다.  마음의 찌꺼기 씻어낸다는 생각으로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다. 그때 야옹~ 하며 나타나는 크림이와 엄마 심기를 살피는 얼굴로 날 보는 쿠키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얘네 응원에 힘입어 부엌일을 마치고 커피 한 잔 하면 오늘을 즐겁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침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밀린 부엌일을 할때.... 하나 둘씩 나타나 힘을 준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 갈 때는 쿠키는 문간에 엎드려서 날 보고 크림이는 변기 밑에  누워 날 본다. 샤워할 때도  두 마리가 부스 앞에서 구경한다. 부끄러움도 사라진 지 오래다.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쓸 때도 내 무릎 위나 책상에 앉아있다. 언제나 웃음과 기쁨을 주는  껌딱지 쿠키와 츤데레 크림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전생에 덕을 쌓긴 했나 보다 싶다.

글쓸때 쿠키는 내무릎에 (무겁다...)크림이는 올라와 전원을 끄거나 키보드를 밟아 망쳐놓지만....그래도 예쁜걸  어떡해.  다시쓰면되지....ㅠ

초등학교 3학년 때,  21세기에는 알약이 개발될 예정인데 이것 하나만 먹으면 배부르고 살찌고 영양섭취가 다 돼서  부엌이 사라진다,  온 식당이 망한다 그런 뉴스를 보았었다. 그땐 내게 부엌이란 차려진 상이나  받아먹고 맛있는 거 찾아 먹는 곳간이었으니  내심 걱정도 됐는데 결혼 후부턴 매우 기다려지는 연구였다. 그런데 그거 다  새빨간 거짓말이겠지 싶다.

차리고 치우는 사람 따로, 먹기만 하는 사람 따로 이렇게  양분되어 있는 세상에서 먹는 즐거움이 없어질 턱이 없으니까. 나부터도 외식은 코가 벌렁벌렁하고 즐거워서 날뛰는 일이니까. 그래, 오늘도 뭐든 즐겁게 하자. 나에게  대수인 일이 있을까. 넝쿨째 굴러온 쿠키 앤 크림의 위로와 응원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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