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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Oct 02. 2022

멈춰진 자동차의 비밀 1

사랑의 방식

꼬박 16년 하고 8개월 23일째라고 했다. 아파트 주차장 같은 자리에 서있는 낡은 외제차.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몰랐던 그 자동차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건 오랜만에 나간 반상회에서 그 차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주차장도 좁아 죽겠는데 도대체 806호는 왜 몰지도 못하는 그 차를 세워두느냔 말이에요." 늘 불만이 많은 비쩍 마른 통장 아줌마가 포문을 열었다. 몇 명이 불평을 거들며 맞장구를 쳤다.

"바퀴 봤어요?? 바람이 다 빠져서 플랫 타이어 된지도 오래예요."

 누군가 덧붙였다.  "그 할머닌 운전도 못해요. 면허증도 없는걸 뭐. 굴러다닌다 해도 못 몰아요."

"관리소에 이야기해서 치우게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런 이야기로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몰든 안 몰든 한 집에 한 대씩 세울 권리는 있으니 문제는 없지 않나요?"

뜬금없지만 틀리지는 않은 내 물음이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 차의 폐차를 유도해 한 자리라도 주차공간을 확보하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나는 가끔 이렇게 입이 방정이다. 분명히 누군가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말을 하는데 내 일이 아니라고 입 다물며 동조하는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다. 싸해진 느낌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참!! 근데 거기 세워두신 이유가 뭐래요?" 하고 질문을 던졌지만,  얼마간의 텀을 두고 “할아버지가 몰던 차래나 뭐래나.” 하는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안건은 곧 다른 것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벌써 이사 온 지 7년째지만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어떤 차가 한 자리에 늘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쨌든 자동차의 사연을 알게 되자 나는 급 관심이 쏠렸다. 집에 돌아와 거실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주차장을 살펴보니 과연 낡은 외제차가 보였다.  그리고 이후부턴 주차를 하면서 그 차 옆이 비어있으면 그곳에 내 차를 세웠다. 적어도 그 차 옆쪽은 문콕 걱정은 없는 셈이니 좋은 자리였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세우게 되면 운전석에 앉아 창문을 열고 그 차를 찬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차에서 내려 남의 차를 요모조모 뜯어보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 러 8**5. 그 자동차의 이름.

 안전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린 고급 외제차였던 이 차는 무슨 까닭으로 이곳에 이렇게 방치돼있을까.  사람의 숨이 닿지 않으면 가구든 집이든 차든 그 무엇이든 망가진다고 하던가. 십 수년, 사람의 숨길이 끊어진 자동차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 녹색 번호판도  바람과 시간의 흔적에  색이 바랬다.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받은 자동차는 아프고 상한 몸뚱이를 찬란한 햇빛 아래 드러낸 채 흉측한 몰골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죽은 미라일지도.

십수 년 전만 해도 와~~ 하고 탄성을 받았을 좋은 외제 차였을 텐데. 당시 꽤 젊었던 이 차의 주인은 세차도 해주고 때때로 기름칠에 수선도 해주고 기분 좋게 뻐기기도 하며 차를 몰았겠지. 이 차도 이곳저곳 주인을 태우고 신나게 달렸을 텐데.

 사람이나 자동차나 역시 말년이 중요한 것인가.

나는 그 자동차의 사연이 궁금했다. 혼자 사는 할머니는 남편이 타다 버린 낡은 외제 승용차를 십수 년간 끌어안고 지낸다는 것인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일찍 돌아오는 길에 듬성듬성 비어있는 주차 자리를 찾다가 그 차 옆자리가 비었길래 얼른 세운다는 게 그만 그 낡은 차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수많은 흠집 중에 내가 낸 것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너무 당황했다. 머릿속에 양쪽 차를 수리할 지폐 뭉치가 떠다니고 식은땀이 났다. 정신을 차리고 살피니 내 차는 범퍼에 고무가 덧대어져 큰 스크래치가 없었다. 일단 내 차는 내버려 두기로 마음먹었다. 죄를 지으면 일단 주변을 살피는 범인처럼 나 역시  혹시 이 사고를 본 사람은 없는지 여기저기 둘러 봤지만 지나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나는 잠시 큰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이 자동차... 어차피 17년 가까이 방치된 낡은 차인데...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지 않을까. 몰랐다 할까? 10년 넘게 세워둔 동안 나 같은 사람 하나 없으려고???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문콕으로 찍힌 듯한 수많은 상처와 스크래치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만약 아파트  창문으로 누군가 보았다면?

아무래도 간이 작은 나는 작은 메모지에 '주차를 하다 사고를 냈으니 이 번호로 연락을 달라'는 메모를 남기고 그 자동차의 창문에 놓아두었다. 그 할머니, 거동도 불편하시다는데 이 차를 매일매일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이 메모지를 보고 연락을 해오실 리는 만무하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면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어쨌든 나는 메모를 남겼으니 할 일은 한 거고.

참!! 사진을 찍어야지. 나는 메모지를 둔 낡은 차의 전면을 폰카메라에 담았다. 또 한 가지, 알았다한들  설마 수리를  해내라고 할까? 갑자기 맘이 편해지며 불어오는 보드라운 바람에 기분도 좋아졌다. 새로 뽑은 신형 외제차를 박지 않은 행운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늘도 돕는다는 말은 이때 하는 건지.. 그날 밤 세찬 소나기가 쏟아졌다.


 다음날, 나는 차를 빼러 가며 소나기에 젖어 글씨가 지워졌을 지도 모를 메모지를 찾아보았다. 비에 휩쓸려갔을까? 메모지는 온 데 간데없었다. 그래도 윈도 브러시로 고정을 해놔서 날아갈 일은 없을 텐데.  그래도 내 폰에는 메모를 남긴 증거가 있으니 마음 한쪽은 의아했지만  메모를 또다시 남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계속)


*사진출처; 클래식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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