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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Oct 03. 2022

멈춰진 자동차의 비밀 2

사랑의 방식

"806호에요." 약간 쉰 여자 목소리.

나는 직감적으로 그 할머니임을 알았다.

 " 아아 네...제가요..."

 "응  메모봤는데...고마워. 메모로 됐지 뭐...낡아빠진차 뭐..."

"죄송합니다..."

"숱하게 박혔을 텐데 그랬다고 알려준 사람은 첨봐..."

중얼거리는 듯한 얘기를 하다가 할머니는

 이내 전화를 끊으셨다. 혹시나 물어내라면 어쩌나 얄팍한 계산을 한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그날 밤, 얼핏 졸다 남편 전화에 잠이 깼다. 택시를 탔는데 집 앞에 내리고 보니 지갑이 없다고 나보고 가지고 내려오란 거다. 서둘러 나가는 나를 따라 저도  데려가달라며 다급하게 뛰어 나오는 쿠키를 안고 투덜거리며 내려갔다. 1층에 내려와  택시를 찾으니 저기 먼  입구에 택시 한 대가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쿠키가 발버둥을 치며 내 품에서 뛰어내린다.

앗!!쿠키!!!

 쿠키는 뒤도 안돌아보고 막 달려간다. 영리한 놈이 택시 안의 남편 냄새를 맡고 그리로 가나 흐뭇했는데, 엉뚱하게 다른 차 앞에 서서 왈왈 짖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라 당황해서 얼른 달려가 쿠키를 안아 들고 보니 그 낡은 승용차였다.


 그리고 나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분명 그 차 안 조수석에 누군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품에 안겨서도 쿠키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차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도망치듯  택시로 달려가 돈을 내밀었다.

비틀거리는 남편을  따라 집으로 오면서도 너무 궁금해 돌아보고 싶었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처럼 돌아봤다가는 돌이라도 될것같은 두려움에 고개를 옆으로도 돌리지 못하고 냉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애꿏은 쿠키만 꽉 끌어안은  채.


옷도 제대로 안벗고  코를 고는 남편 옆에 모로 누워 나는 자꾸 그 차 안에 누가 타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쿠키의 반응도 있고 잘못 본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시간 그 낡은 차 안에 대체 누가 있었던 걸까. 분명한 건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음 날, 외출하고 돌아온 나는 경비 아저씨가 전해주는 등기를 받다가  어젯밤 그 차에서 사람을 본 것 같다고, 우리 강아지가 짖어서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경비아저씨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었다.

"늘상 있는 일이에요. 그 할머니 낮이고 밤이고 가끔 그 차에 앉아계세요.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네???!!" 나는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가 몰던  차를 폐차도 안하고 그 오랜시간동안 주차해놓고 가끔씩 그 차 안에 앉아있다니...

이쯤되면 그 자동차에는 무언가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짐작해보건데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소중한 자동차를 버리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할아버지와의 좋았던 추억을 그 차 안에서 되새김하는 건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눈물겨운 사랑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 분은 그 차를 타고 방방곡곡 추억을 쌓으셨었나보다. 궁금한 이야기 Y라던가 시사프로 꼭지에 소개될 만한 이야기아닐까 하는 상상의 나래까지 폈다.


그리고 두달 후, 또다시 반상회가 열렸다.  쓰레기 처리 문제 외부인방문 통제 문제 등 여러 안건에 이어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로 올랐다.

나는 이번엔 아줌마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입을 닫기로 했다. 저번에 나의 질문 ㅡ한 세대당 한 대씩은 세울 권리가 있다는 말ㅡ이 거슬렸는지 임펙트가 있었는지, 한 주민이  "물론 세대당 한대씩 세울 수는 있지만 어쨌든 움직이지 않는 차가 지하주차장도 없는 이 좁은 주차장에 그렇게 십수년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불합리하죠. 이건 해결을 해야할 문제가 아닐까요?."

나의 말을 선점해서 다시금 문제제기를 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여서 나도 얼른 동의했다.

"그렇긴 하죠. 암요"

그러다가 귀를 의심할 만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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