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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Oct 04. 2022

어느 날 갑자기 부담스러워졌다.

쿠키와 크림이가.

어느 날 새벽이었다. 잠을 깨면서 움직이다 보면 항상 내 발과 손에 동시에 만져지는 귀염둥이들의 보드라운 털. 발 밑엔 쿠키가, 왼쪽 손 닿는 거리엔 크림이가 자고 있다.

내가 일어나자 얘들도 동시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본다. "엄마 이 새벽에 뭐야?" 하는 귀찮은 눈빛.


손과 발, 혹은 내 몸 어딘가 쿠키와 크림이의 따스하고 푹신한 털이 닿는 일은 언제나 엔돌핀이 솟구치고  손이나 발로 살살  터치하다 보면  다시 잠으로 빠져드는 애착 담요 같았는데.

 그날은 잠이 달아나면서 울컥 부담감이 밀려왔다. 언제나처럼 두 마리의 머리부터 등을 지나 엉덩이까지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얼굴을 비비고 작고 보드라운 손발을 만지작거리는데  마음이 무겁고 한숨이 나왔다.

잔인한 시간은 흐르고 흘러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두려움과  슬픔의 구렁텅이로 나를 밀어 넣고 있었다.


 지난  늦봄, 1년 만의 건강검진에서 쿠키의 간수치 세 개 중 한 개가 유난히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수의사 선생님은  4개월 후인  이번  9월쯤 다시 한번 피검사를 해보고 계속 높으면 간 약을 먹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었다. 그동안 쿠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 알러제닉 사료와 물 이외에는 결코 먹이지 않는다는 맹세와 다짐도 강요하셨다. 나는 가족 단톡방에  이 사실을 공표하며 '사료 이외 간식을 주는 자는 엄한 벌(구체적이지는 않음)에 처한다' 고 협박을 했는데 오로지 한 사람에게 하는 얘기였다. 남편!

 아이들은 이미 간식을 주지 않은 지 오래됐다.


9월이 되면서는  하루하루 쿠키의 병원 갈 날을 조율했다. 무서워서 너무 가기 싫었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곧 추석이라 추석 이후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추석빔으로 먼저  쿠키 미용을  해주기  위해  병원에  갔다.  그런데  갑자기 담당 실장님이 미용 전에 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흰 종이를 내밀었다. 별생각 없이 받아 든 동의서 내용에  나는  우지직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노령견, 중대 질환자 동의서라니...

미용은 강아지에게 큰 스트레스다.  더군다나 착하고 순한 쿠키 같은  강아지일수록 3시간에 달하는 전체 미용 시간을 얌전하게 견디는 일은

수명이 줄어들만한 이슈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생각해본 일 없는데  노령견들이 종종 미용 중에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우리 쿠키의 일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무섭고 겁이 났다.

아직 활기차고 동안 외모를 가졌지만 굳이  인간계의 나이로 따져보자면 만 열 살의 강아지는 70살도 넘은 나이다...ㅠ


외모는 5살 미만인데... 강아지 나이로는 진갑이 넘었다니!

추석이 끝나고도 며칠을 뭉기적거리다가  쿠키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쿠키는 미용만 하는 병원과 치료를 하는 병원이 따로 있다..)

피를 뽑는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서너 달을 간식  한번 안 주고 엄격하게 관리했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번보다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간수치가 나왔다. 선생님은 이제 간약을  먹이자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 세포도 정상 이하라 아토피 같은 피부병이 배와 손발톱 귀까지 퍼져있다고 했다. 원체 면역력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작년  봄까지 양호했는데...


빨간 점찍은 수치가 다 정상이하다 ㅠ
간약  /  피부약


신경이 쓰이는 일은 또  다. 이제 두 살 갓 넘은 크림이8월부터 갑자기 한 달에 두세 번씩  구토를 하기 시작해서 근심을 보탰다.  고양이는 워낙 헤어볼을 토하는 게  당연하다고  알고 있지만  1년 반이 넘게 키우며  한번도 토하지 않아 내심 흐뭇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헤어볼과 소화되지 않은 사료를 토해놓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크림이 증상을 문의했더니 한 달 두어 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안심은 시켜주셨지만  어쨌든 걱정이 되어 헤어볼 배출이 용이한 사료를 사서 쿠키와 약봉지를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는 물을 많이 먹는게 좋다니 뭘 마셔도 이쁘다. 응 엄마컵이든 네 컵이든 무조건 마셔~~
크림이의 신기한 포즈,  마치 요가하는 폼같다 ㅋ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나는 갑자기 쿠키 앤 크림이를 보는 일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게 된 것이다. 특히 쿠키의  미용 동의서와 주요 혈액검사 결과가 좋지 않은 것만으로 열 살인 쿠키가 혹시나 생각보다 빨리 내 곁을 떠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나를 가두게 되었다. 쿠키가 25년은 살 거고 그래서 15년은 시간이 남아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15년 후면  나도 70이 다 되는 나이고  늙을수록 감정선도 무뎌지겠지  생각하곤 했었다.




30대 중반,  방송국에서 신나게 일을 하고 맛난 회식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4살 2살의 두 아이들이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평화로이 자는 소중한 아이들을 보노라면 감격도 잠시 '어쩌다 내가 겁도 없이 아이들을 둘이나 았을까,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 아프면 어떡하지... 도대체 애들이 언제 크려나...' 기쁨보다 막중한 책임감과 막연한 걱정에 힘든 적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정성을 쏟고 내 뼈와 살을 갈아 키우다 보면 초중고를 거치며 심리적인 독립을 시도하고 스무 살이 넘으면서 서서히 알아서 하는 것도 많아지며 서른 살이 넘으면 혼자서 큰 듯 필요할 때나 가끔씩 연락하고 살만큼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어쩌면 가끔은 내가 아들딸에게 도움받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쿠키와 크림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히 내 손이 전적으로 필요한 '언제나 아기'라는 뻔히 알고 있던 사실에 현타가 왔다. 인간보다 수십 년 명이 짧은 반려동물들이 아프고 병들고 결국엔 이별하는 일은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알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해본 적은 없다. 골든 리트리버를 아들처럼 키우던 초등학교 동창은 10여 년 키우던 강아지를 갑자기 떠나보내고 일 년간 잠수를 탔다. 강아지 때문에 이사도 다니며 부부가 합심해 진심으로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여서 얘가 이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녀는 두 마리의 유기견을 입양한 후에야 잠수를 끝내고 모임에 나왔다. 생각보다 덤덤한 모습에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2차에 가서 한잔 두 잔 술이 들어가자 나라 잃은 사람처럼  꺼이꺼이 우는 바람에 우리 모두 따라 울었다. 그 술집에선 구경거리가 됐지만 섣불리 어느 누구도 조용히 해달라고 말도 못 붙일 정도로 눈물바다였다. 브런치에서도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글들을 읽으며 맘이 아파 울기도 여러 번, 특히  고양이들은  갑자기 신장이 나빠져 힘든 투병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파도 숨긴다는 사실에 자꾸 크림이를 살피곤 한다.

그래도 여전히  '설마'나 '아직은'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위안이라면 "선생님 우리 쿠키 오래 못 사나요ㅠㅠ?" 울 듯한 내 질문에 선생님은 큰소리로 웃으며  "아아   그런 건 아니에요!! 간식만 먹이지 마세요."라고 한 말이다.(사실이겠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알약을 쿠키에게 먹이기 위해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그냥 먹이는 경우도 있지만 도저히 안될 땐 손톱만큼 작은 간식과 함께 넘기게 해야 할 때도 있으니.

매일  알약을 먹이고  손발톱 구석구석과 배에 물약과 연고를 발라주고 귀지를 파주고 세척해줘야 하는 등  시중이 늘었지만 이래서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일도 아니지.

 언제 돌아와도 쿠키는,  현관까지 뛰어 나와 꼬리를 흔들며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긴다. 10년이 넘도록 그 루틴을 어긴 적이 없어서 너무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이나 아직은 20대 초반인 아이들이나 남편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긁히고 상처가 날 때 그 상처에 연고도 발라주고 밴드도 부쳐주는 녀석은 까만 눈으로 내 옆을 지키던 쿠키였다.


귀찮아도  산책을 나가고 비가 와도 산책을 나가고  더워도 추워도 산책을 나가야지. 털이 길어서 유기견같이 얼굴이 못 생겨져도 스트레스 덜 받게  미용 텀을  최대한  늘리고 더 많이  예뻐해 줘야지. 그러다 보면  이 정도라도 건강을  유지하며 버티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 본다. 어제도 꽤 많은 비가 와서 쿠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책을 못 나갔는데 오늘도 비가 온다.  어제보다는 잦아들었으니 비옷이라도 입혀서 나가봐야겠다. (예전 같으면 오늘도 안 나갔을 텐데)


비를  맞고도 들어오기 싫은  얼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 살자. 얘들아. 그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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