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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Oct 05. 2022

멈춰진 자동차의 비밀  마지막 회

사랑의 방식

십수 년 동안 차를 세워두고 기능을 잃고 죽어버린 자동차에 때때로 앉아 추억하는 일은 할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 그녀의 자리는 그녀가 운전대를 잡아본 일이 없다는 방증이다. 그녀는 늘 운전을 하는 할아버지의 옆에 앉아 있었겠지.  80년대쯤 되었을까? 외제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이 차를 몰 정도라면 할아버지는 재력도 있었을 것이고 멋쟁이였을 것이다. 할머니의 내조는 극진 했겠지. 중절모에 양복까지 갖춰 입고 그는 어쩌면 약간의 거드름을 피우며 차를 몰았겠지. 운전기사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기사가 전담으로 몰던 차라면 할머니가 이웃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이렇게 오랫동안  차를 세워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엔 도로도 한산한 때였고 사이좋은 중년의 부부는 경양식집이나 백화점 그리고 바닷가가 있는 동해안까지 많은 드라이브를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자동차는 집을 떠난 남편의 것이라고 했다. 집을 떠났다는 것은, 무슨 얘기지? 사별은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 아니었다.  

"뻔하지... 바람이 났대요."

"설, 설마요.. 그런 남편의 자동차를 저렇게 간직한다고요?" 모르겠다는 듯 아랫집 사는 이웃은 어깨를 으쓱했다.

 할머니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조각조각의 이야기와 그저 짐작이 가는 언행으로 이웃들은 그녀의 퍼즐을 얼기설기 만들어 왔을 뿐.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반상회를 나오지 않았고  반상회를 이유 없이 나오지 않을 경우 벌금이 있다 해도 조용히 벌금을 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떠난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집주인들과 세입자들은 거의 바뀌어있었다. 단 서 너 집만 빼고.

노부부의 애절하고도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멋대로 상상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나는 나만의 소설임을 깨달았다. 행복하게 해로하는 부부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노부부의

사랑으로 멋대로 포장하고 흐뭇해하고 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남편을 잃었다. 어딘가 살아계신다 해도 잃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할아버지를 추억하고 기억하고 있다.

 예상 밖의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슬프고도 화가 났다.   집 나간 남편의 자동차라면 나는  단 몇 푼이라도 돈을 받고 당장 팔거나 폐차를 시켰을 것이다. 바람이 나서 떠난 거라면 그 차를 부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할머니의 입장에선  자동차를 함께 타고 다닐 때만은 너무나 행복했기에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추억마저 놓아버린다면 버틸 힘도 이유도 없을지도 모르니.




이별이든 죽음이든 떠난 자에 대한 남은 자의 사랑의 방식은 제각각이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생을 기다렸던 어느 아내도 있었다.  죽은 남편을 미라로 만들어 함께 먹고 자며 그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던 어느 약사의 이야기.  더없이 착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였고 고위공무원으로서 밖에서도 덕망이 높았던 남편을 암으로 잃고도 떠나보내지 못한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 사건이 터졌을 때, 몇 줄의 신문 기사만 읽고도 맘이 너무 아팠다. 그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본인은 갈가리 찢기고 가정은 해체될 것 같은 숨막히는  불안감에 그녀는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설사 심장이 멈추었더라도 살아있는 사람 대하듯 하다 보면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

대학에서 과학을 공부한 엘리트 약사의 모순되는 이 행동에 모든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찰은 그녀를 사체유기와 공무원 남편의 연금 등을 부정 수급한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그녀를 이해하고 감싸 안았다.

모든 것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녀를 이해하던 나로선 법원의 판결이 따스하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다.

할머니의 자동차는 이제 없다. 할머니도 안 계신다.

그녀가 움켜쥐었던 행복했던 추억으로 마지막까지 행복하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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