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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Sep 18. 2018

나는 앞으로 자주 낯선 곳에 던져질 것이다

2018 광주비엔날레에서 마주한 단상

 이 글은 비엔날레를 다녀온 뒤 적는 것이긴 하지만,

그곳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쓰지 않을 생각이다.

오히려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쯤?

그래서 전시의 정보랄 것이 없을 듯한데, 한 가지만 적자면 아시다시피 전시장소가 2개다.

비엔날레 메인 전시장보다 아시아 문화전당 쪽 전시가 더 좋았다는 개인적인 감상을 남겨둔다.

가시게 된다면 아시아 문화전당 전시장까지 꼭 보시길 바란다.




 나만큼 익숙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늘 듣던 음악만 들어서 학창 시절 가요 밖에 모른다. 로이킴이라는 가수의 노래도 이번 주에 처음 제대로 들었다. 최근 보게 된 드라마 <아는 와이프>의 음악이 좋아서 찾아본 것이다. 처음 알게 된 낯선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비엔날레 통합 패스를 구입했다.

올해는 연구를 핑계 삼아 원 없이 모든 전시를 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광주까지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가는 길은 왜 이리 멀고 복잡하게만 느껴지는지, 무사히 기차에 몸을 싣고도 걱정이 많았다. 광주역에 도착해서도 셔틀버스 타는 곳을 찾아 헤맸다. 무작정 3번 출구라고 알고 갔는데, KTX 기준이 아니라 지하철 3번 출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전시장 앞에 도착했을 때, 결국 해냈다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해외여행을 간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밀려오는 안도감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열심히 관람을 마치고 다시 셔틀을 타고 아시아 문화전당 비엔날레 전시로 향했다.

세계의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나에게 비엔날레 전시장은 대단히 무릎을 탁 칠만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5.18 등을 다룬 아시아 문화전당 쪽 전시가 훨씬 울림이 있었다.


 

아키라 츠보이 작가의 <일본군성노예> 연작
쓰여진 사연마다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5.18 당시 시위대를 숨겨주는 등 활약했으나, 유흥업 종사자인 황금동 여성들의 행적은 기록되지 않고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비엔날레에서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이번 전시를 잘 봤다. 좋았다.

전시를 통해 배웠고, 많은 영감을 얻었고, 5.18과 관련해서도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았다.


어떤 경험도 결국은 좋았다고 귀결될 걸 알면서도 왜 나는 시작하기까지 겁이나는가.


기억에 남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비엔날레에서 얻어 돌아온 건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다.

이렇게 평일에 쫓기지 않으며 전시들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런 삶을 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득 선택에 대한 생각은 작품에서, 전시에서, 오늘의 낯선 도시에서부터,


마침내는 내 지난 삶에 대한 성찰로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무슨 맥주 광고도 아니고..

광주를 떠나는 심야버스를 기다리며 맥주를 한 캔 사서 들이켰다.

외면해오던 생각을 마주했다.


그래.


이제 나는 자주 낯선 곳에 서있게 될 것이다.

익숙한 것을 버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작은 기쁨을 알게 되고 도전을 채워나갈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믿게 될 것이다.

익숙한 곳에서보다 낯선 곳에서 나는 내가 더 좋아진다.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 믿고, 나는 나를 계속 낯선 곳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하여

낯선 곳에 설 때마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온

나 같은 누군가를 만나 서로에게 따스한 눈인사 건넬 수 있길.


서로의 길을 말없이 응원할 수 있길.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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