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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Dec 28. 2018

사회적 죽음에 대한 고찰

사회적 논의와 행동을 이끈 죽음에 대하여

 무작정 사회적 죽음이라고 하면 관점에 따라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편의상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사용하는 것을 양해 바란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려는 사회적 죽음은 죽음의 원인이 사회 문제에 있는 죽음이다. 이는 내 논문에서도 사용한 단어인데, 굳이 정의하자면 ‘죽음의 원인이 각종 사회 문제에 있으며 그 죽음으로 인하여 사회적 논의와 행동을 이끌어낸 경우’에 한정하고자 한다.


 전쟁이었든 자살이었든 그 원인에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는 죽음.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인하여 사회적 논의와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낸 그런 죽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연 재난의 시대가 찾아온 것일까?

 세계 곳곳의 사건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세계화된 재난이 실시간으로 다다를 뿐 아니라 재난의 가능성이라는 것 역시 가까이에 잠복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죽음과 생중계는 공공연해지고 대담해진다. 실시간으로 죽음의 시뮬라르크가 생성된다. 타인의 죽음 소식은 종종 무뎌지고, 무뎌진 만큼 죽음의 위협은 계속해서 빈번하고 커진다.


 미디어를 통한 스토리텔링도 시작되었다. 사회적 죽음은 개인적이고 가까운 것이 되면서, 우리는 희생자의 구체적인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되었다. 주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우리는 사건의 전말과 희생자의 얼굴, 이름, 그리고 그의 가족사항과 그가 가진 안타까운 사연도 접하기 쉬워졌다. 희생자에 관한 스토리텔링은 국민적 슬픔과 공분을 자아내어 새로운 행동을 이끌기도 한다. 희생자의 얼굴과 사연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그를 더 이상 모르는 자가 아닌, 점차 아는 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내가 생전 알지 못하던 그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나의 이웃’을 잃은 일이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 나타난 이러한 죽음의 특징들은 특히나 사회적 문제를 품고, 사회적 행동을 일으키는 사회적 죽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죽음의 파급력이 커진 것이다. 죽음의 집단화, 죽음의 생중계, 죽음에 관한 미디어의 스토리텔링은 사회적 죽음에 개인의 삶까지 불어넣으며 살아있는 이들을 남겨진 자,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렇다면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마주한 사회적 죽음의 모습을 고찰해보자.     




 우선 사회적 죽음은 개별적 성격을 고찰해야 한다. 이는 국가별, 문화별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무엇보다 사건의 개별적 성격이 제각기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서로 다른 역사, 문화적 맥락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죽음 이후 이를 다루는 문제 역시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니엘 에르비외 레제(Daniele Hervieu-Leger)는 죽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기본 현상이지만,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과 죽음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사회에 따라 다양성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죽음은 원래는 특정 사회의 문화적, 정치적, 심리적, 감정적 표현 방식을 초월하는 경험이지만 한 시대, 한 장소, 한 집단에 고유한 ‘상징적 포장’으로 다듬는 작업에 의해 사회마다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 다니엘 에르비외 레제, 「현대사회에서의 죽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김성희 옮김, 알마, 2013, p.p.71-72.)


 모든 죽음에는 기억이 뒤따르지만, 사회적 죽음에서 유독 기억의 무게가 강조된다. 그 이유는 그 기억이 사건의 원인이자 본질, 그리고 미래에 대한 사회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집단의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회적 죽음이다. 죽음 이후의 사회적 차원, 국가적 차원의 행동과 변화가 주목된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바탕은 죽음의 기억이다.

 위안부 소녀상을 둘러싼 기억과 일본의 사죄 문제가 그 오랜 세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현재 진행형인 것처럼, 사회적 죽음과 폭력에 관한 긴 투쟁은 언제나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한 사건을 둘러싼 서로 다른 많은 기억이 터져 나올 때에 기억의 재구성에 대한 책임과 과제도 뒤따르게 된다. 


 기억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죽음은 이후가 더 문제다.

 사회적 죽음을 살펴볼 때 죽음 이후의 문제들이 깊은 갈등의 골이 되어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사회적 죽음에 뒤따르는 ‘트라우마’의 개념은 익숙한 것이 되었다. 상실과 트라우마를 본격적으로 사회적 현상에 도입한 것은 홀로코스트에 관한 저 무수한 논의들을 통해서다.     


  또한 사회적 죽음은 이중적이다. 사회적 죽음을 다룰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스템에서 사라진 개인을 추적하고 안타까움을 추모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칫 문제의 핵심을 개인에 대한 추모만으로 덮어버리는 일에 불과하다. 



 즉 우리는 개인을 기억하는 동시에
이 죽음을 만든 시스템과 사회문제를 짚어야 한다.



 개인에게 가해진 거대한 모순을 발견하고 고쳐야 한다. 사회적 죽음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죽음은 그 사회가 가진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드러난 문제였든 혹은 잠재된 문제였든, 그 문제를 개인이 짊어지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반성이라는 것은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으로 격상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따라서 남겨진 자들에게 맡겨진 책임은 애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사회문제로서만 이 죽음을 이야기할 것인가? 사라진 개인에 대한 기억과 애도되어야 할 그의 삶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바로 이러한 고민이 사회적 죽음이 가진 이중적 문제다. 개인에만 초점을 맞추면 사회적 문제의 모순과 시스템의 문제를 은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집단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그것 역시 사라진 개인에 대한 윤리적 고찰이 부족한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특히 대형 재난이나 학살과 같은 문제의 경우, 즉 다수의 사람들을 잃은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앵커 시절,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뉴스에서 어두운 옷을 입을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곤 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죽음은 그 이중적인 성격을 감안해 충분히 규명되고 애도되고 있을까? 


 우선 한국에서의 사회적 죽음은 충분히 규명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적절한 시기에 조사되지 못하거나 은폐되었거나 충분한 애도를 할 수 없었던 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이 있다. 그렇다 보니 이러한 죽음에 대해 국민들은 언제나 양가적 감정을 지닌다. 죽음에 관한 짧은 사실보다 분명 다른 긴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 또는 의심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의혹의 문제는 국가와 공동체에 관한 신뢰의 문제로 커지기 마련이다.



 정리하자면, 사회적 죽음은 ‘죽음 이후’의 문제가 중요하고,
애도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발생한 사회적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주요 과제가 남고, 기억의 문제에 예민하다. 이러한 기억의 문제를 비롯해 사회적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면 사회의 트라우마로 이어지게 된다. 죽음의 원인이 된 사회 문제와 구조를 짚으면서, 동시에 희생된 개인에 대한 기억과 애도 역시 필요한 점에서 이중의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사회적 죽음에 필요한 올바른 애도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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