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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Apr 01. 2019

드디어 나만의 갭이어에 발을 들여놓다

참 오래도 걸렸다


 퇴사를 한 시점은 1년 하고도 몇 달 전이었으나,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졸업이 마무리되고 나니, 일부러 시기를 맞춘 것도 아닌데 이사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멀리.


 일도, 배움도, 삶의 터전도 모든 것이 변했다.


 그야말로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다시 일을 한다 해도 직종을 바꾸거나 완전히 업그레이드된 내가 되고 싶었다. 방송은 나이를 먹을수록 불안해지는 구조였다. 나는 나이를 먹고 경력을 쌓을수록 존경을 받고, 일의 전문성도 가지는 성장형 직업을 원한다. 미학 역시 생계를 위한 전업으로서 선택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과 고민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당혹감과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솔직히 인생의 전환점임이 너무나 확실해 설렘마저 들었다.


 지금 내리는 나의 결정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겠구나'
하는 비장함이 들었다. 



 따라서 결정을 신중하게 내리고 싶었다. 더 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말이다. 옛날에 목숨 걸었던 나의 꿈의 직업을 이루어 경험하고 나니, 더 크고 넓은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듯이. 조금 더 심사숙고하고 싶다.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은 말이겠지만, 인생에서 1,2년쯤 방황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그 말을 머리로 이해했다면, 너무나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되돌아봤을 때 정말 맞는 말이었다.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 20대다. 20대에 이미 사회생활을 꽤나 했고, 결혼도 했으며, 학문에 관한 열의를 불태워 석사도 마무리했다. 문제는 나처럼 성취를 좋아하고 열심히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잠깐 쉬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배로 크다. 조급하고 불안하달까. 이런 양가적 감정을 지닌 채 나는 내 마음의 무게추를 설렘 쪽으로 더 기울여보기로 했다.


 2019, 나의 갭이어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간 만나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길어야 열흘 그것마저도 눈치 보며 찔끔찔끔 떠났던 해외여행은 언제나 아쉬움이 컸다. 이번 달 중순부터는 두 달 정도 긴 여행을 가려고 한다. 물론 맛있는 것을 먹고 SNS에 올리기 좋은 예쁜 곳들을 찾는 수준으로 가고 싶지 않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준비해서, 내가 얻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극대화시킬 것이다. 또한 예술을 치열하게 공부한 만큼, 그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사유들을 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나의 갭이어 준비는 솔직히 즐거움보다는 용기와 도전정신, 약간의 부담이 뒤섞여있음을 인정한다.


 백수가 되었는데 돈을 더 쓴다. 모은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 돈을 나의 갭이어에 쓰는 것이 두렵지도 않다. 오히려 가끔씩 아끼고픈 마음이 들 때마다, 인생에 이렇게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시기가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자각해본다. 오히려 제 때 투자하지 못한 날들을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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