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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Feb 21. 2022

화면 속 아는 얼굴들,

새벽 공부를 나서다 문득 끄적임

 

 TV를 켤 때마다, 길을 걸을 때마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나는 아는 얼굴들과 만난다. 유독 내 주위엔 방송인이 많다. 예술고를 나왔고, 내가 아나운서로 방송을 했기 때문도 있지만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거나 드라마로 쓰면 개연성이 너무 없는 거 아니냐며 뭐라 할 것만 같은, 구구절절 신기하고 희귀한 인연으로 알게 된 지인들이 많다.


 오랜 시간 지켜보니, 꾸준한 사람들은 끝내는 대성 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때로는 너무 간과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오랜 시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신기하다. 체감적으로 그 얼굴들을 거리에서, 화면에서 만나는 빈도가 많아지고, 무명에서 유명이 된다. 내가 아는 분들은 다들 좋은 분들이므로, 그들의 성공과 발전이 무척 기쁘게 느껴진다.     


 그런데 유독 오늘 새벽, 지하철역 광고판에서 만난 아는 선배의 얼굴이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처음엔 당장 지금의 안부가 궁금하다가, 저 사람이 저 자리에 갈 동안, 나에게도 많은 발전이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생사의 우여곡절이야,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나는 이 새벽에 어떤 이유로 광고판 속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나? 갑자기 나의 고군분투가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름의 성취가 있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이젠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 겁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 사이에 내겐 주렁주렁 자식들도 생겼다. 잃을게 생기니 더 소극적으로, 움츠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지 그 와중에도 뭔가 해보겠다고 이 추운 날 여기 서있는 거 아니냐 등등 잡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면서 그와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 10여 년 전을 생각해본다. 10여 년 동안 그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을 테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의 계절과 나의 때, 나의 전성기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런 ‘때’를 만들기 위해 나는 이 추운 새벽에 자식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나와 공부하러 가는 것이라고. 이 어두운 시간이 모여 나의 새벽과 나의 아침을 열어주리라 믿는다.      


 이런 잡생각이 처음은 아니다. 방송을 볼 때마다, 기사에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인들의 광고판이 지나갈 때마다 매번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다.      


 그러고 보면 결과적으로, 나는 얼굴이 알려진 지인들이 많은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싶다. 정말 기쁘다. 그들의 나아감을 지켜보며, 나를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도 더 마음을 다 잡고, 내가 그들을 자랑스러워하듯 그들에게도 내가 자랑스러워지는 ‘때’가 올 것이라 다독이게 된다.

 이런 것도 인복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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