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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학자P Sep 19. 2018

무슬림 웨딩 들러리를 서다

말레이시아 무슬림의 결혼식 풍경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이 이야기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그야말로 내가 아끼고 또 아끼는 기억 중 하나다.

(시작에 앞서 오해 없도록 밝힙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쉽게 말씀드리자면, 동남아 무슬림과 사우디 무슬림은 좀 다릅니다.  결혼 풍경도 차이가 있겠지요. 무슬림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정리하겠습니다^^)


 긴 웨딩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잠시 지난 이야기를 풀어본다.

 대학생 시절 말레이시아에 단기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그 덕에 타 종교에 대한 관심이 생겨 역사학적 관점에서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가릴 것 없이 공부했다. 마침내 그 연은 예술학이라는 세계로 나를 이끌었음을 인정한다. 언젠가, 더 많은 경험을 쌓아 많은 종교에 관한 글을 써보는 것이 꿈으로 자리 잡았다.


 바로 그 짧은 교환학생 때 만난 영어교육과 친구들과 정말 친해져 매년 서로 번갈아가며 양국을 오가고 있다. 친구들은 이제 모두 어엿한 커리어우먼, 학교 영어 선생님들이다. 어느새 결혼을 하게 된 우리,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 하피자의 들러리를 서러 말레이시아로 가게 되었다.


사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내가 회사를 관둔 직후였다. 퇴사 여행으로 무슬림의 웨딩 들러리를 서게 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다종교 평화국가다. 크게 중국계와 말레이계, 인도계 사람들이 있다. 말레이시아 영화관에서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자막이 3개가 나와서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였다.

이들은 저마다 결혼식의 모습도 다른 듯했다.



신부측에 보내는 신랑의 선물. 신랑집에서 식이 열릴때 신부도 시댁에 보낸다고 한다.



우선 말레이 무슬림 웨딩은 신부의 집에서 한 번 신랑의 집에서 한 번 열린다.

집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내가 간 친구의 집은 2~3일에 걸쳐 행사가 이뤄졌고, 준비기간 등을 합치면 며칠 더 걸린 듯도 하다. 보통 지인들은 메인 세리머니나 하루 정도만 참석을 하고, 정말 친한 경우와 가족 친지들은 이틀을 함께 한다.

나는 2박 3일 동안 친구의 집에 머물면서 함께 처음부터 준비할 수 있었다.


우선 신부는 하객들을 위한 선물을 손수 준비하는데, 가장 친한 들러리 친구들의 선물은 조금 더 컸다.

선물 안에는 간식과 공책 등이 들어있었다.



집안에 포토존을 꾸미고 며칠 동안 오는 사람들마다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스냅사진 작가도 부르고, 출장 메이크업을 부르는 점이 신기했다.

무슬림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처음으로 만났는데,

다음날 메인 세리머니 때 나의 메이크업도 이분께 의뢰했다.


내 친구 하피자와 스냅사진 작가님, 메이크업 선생님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 무슬림 아티스트의 메이크업 가방을 촬영했다.

우리나라 메이크업 선생님들의 내용물과 똑같았다.

샤넬이나 디올, 맥 등 누구나 들어본 베스트셀러 아이템이 모두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신부는 메이크업을 받고 모스크로 향했다.


그간 종교와 무슬림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비교적 편견이 없는 편이라 생각했는데도 편견은 있었나 보다.

내가 꽤나 긴장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성당에 다니는 가톨릭 신자이기에 모스크에 함께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조심스러웠다.

 알고 보니 친구는 미리 모스크에 갈 내 옷도 준비해두었다.

타문화에 대한 존중의 자세만 있다면 타 종교인 것은 상관없다고 했다.

결혼식에 친구 축하하러 온 거니까.



그래도 뭔가 엄청 긴장한 마음으로 조신하게 모스크에 입장했다.


결혼 의례는 신랑에게 신부의 아버지가 몇 가지 질문을 하며 검증을 한다. 내 친구는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기에 그 역할을 큰 오빠가 대신했다.

이 의식 후에 모스크 근처의 친구 아버지 묘소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새로이 친구의 시댁이 되는 분들도 모두 눈물을 훔치며 결혼 전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님을 안타까워했다.




이 모든 오전 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나는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를 받았다.

이를테면 무슬림식의 기도를 할 때,

기도를 하기 전에 가톨릭 신자인 나를 계속 배려하면서 따라 하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고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줬다. 바쁜 가운데서도 말레이시아 문화에 대해 오해 없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모두들 애써주셨다. 나는 괜히 나에게 너무 신경을 쓰게 한 것 아닌가 죄송스러워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있으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친구 가족들에게 머나먼 타국의 하객으로서 자부심이 되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묘지를 방문하는 일이 아무래도 흔치 않은 일이고(그들로서도 결혼한다고 당일 가족의 묘를 가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다만 돌아가신 지 워낙 얼마 안 되어 그 안타까움 때문에 생긴 일정이다.)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 따라가지 않아도 되니 어떤 일정에서든 불편하면 말해달라고 재차 생각을 물었다.

어렵고 무섭다 할 건 없었다. 그저 친구 아버지를 뵙는 일이니 내 나름대로 조의를 표했다.


이후 식사를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웨딩 들러리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 바로 사진 촬영.

이곳에서는 푸른 논에서 커플 사진을 찍고 들러리들과 촬영하는 것이 전통이란다.


사진 촬영중인 신혼부부 (친구들이 건너편에서 얼레리꼴레리 해서 부끄러워하는 중)



아무튼 예쁘게 촬영하고 와서 쉬나 했더니,

본 행사에 참여할 어린이 하객들을 위한 간식 만들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결혼식을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준비한다는 게 놀랐는데, 친구의 존재는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간식 만들기를 친구들이 다 함께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나를 배려해주면서 방에 들어가 자라고 했는데, 어디 그럴 수 있나.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들에게 설명했다.


"잘 들어. 한국에는 빨리빨리 문화라는 게 있어. 지금부터 역할 분담할 테니까 빨리빨리 해라."


이 친구들이 한국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빨리빨리 같은 것들은 다 알아들어서 결의를 다졌다.

만들다 보니 끝이 없었다. 정말 상자 수십 개에 몇천 개를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얼마나 깔깔거리며 즐겁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성격이 급한 나 덕분에 역할분담과 함께 초고속으로 컵케익 만들기가 끝났다.

한 친척 아주머니는 한국인의 긍지에 놀라움을 표하며 이 컵케익은 모두 한국인의 것이라며... 뿌듯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신부의 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친구들을 위해 신부는 근처 하우스를 렌트해준다.

나는 처음에 도대체 하우스 렌트라는 게 뭔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빈 하우스 마을 단지가 동네마다 있었다.

이런 행사 시 렌트를 위한 것이었다.


드디어 메인의 날.

이날은 들러리 친구들이 모두 같은 색의 옷을 입어야 한다.


무슬림 화장이 쎄서 얼굴은 가려봅니다...


말레이시아 전통 의상인 '바주 쿠룽' 혹은 '바주 꾸룽'이라고 불리는 옷이다.

무슬림이 아닌 나는 스카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줬는데,

친구들과 웨딩 사진 찍을 때만큼은 착용했다.

왜냐하면 다들 뒤집어쓰고 있는데, 친구에게 평생 남을 결혼사진에서 혼자 튀고 싶진 않았다.

우리나라도 흰 옷 입고 결혼식 가는 하객을 민폐라고 하는 이유가 있지 않나.

결론: 결혼식 사진 주인공은 신부!


메인 세리머니는 마을 체육관 같은 굉장히 넓은 곳에서 진행되었다.

내가 또 한 번 놀란 건, 여긴 정말 페낭에서도 한두 시간 더 들어가는 시골마을이었는데 한류가 대단했다는 것이다. 바로 화동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 히잡과 한복이라니, 그나저나 여기서 한복을 팔다니.


한복을 입은 화동



메인 행사와 함께 식사가 끝나고, 나는 일이 있어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음은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할 차례. 벌써 기다려진다.



나처럼 말레이 결혼식에 가게 될지 모를 분들을 위해 딱 두 가지 팁을 드리자면,


1. 축의금은 안 받으려 할 테니 선물을 준비할 것

 그들 역시 우리나라만큼이나 손님에 대한 배려가 깊은 문화다. 그러다 보니 타지에서 온 손님이라면 더더욱 축의금은 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부 화장품 세트 등 선물로 준비해 갔다.


2. 존중하는 마음으로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할 것

 무슬림들은 알다시피 긴 옷을 입는다. 말레이시아는 사우디와는 또 달라 비교적 개방적인 편이긴 하지만 역시 긴 옷을 입는다. 수업을 듣거나 이런 행사가 있을 때 더더욱 노출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특히나 외국인의 외모는 눈에 띄게 마련이다. 나는 관심을 많이 받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신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레이시아 옷을 준비해 갔고, 전통의상을 입지 않는 시간에도 최대한 보수적으로 입었다.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기본 예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여기서는 결혼식 이야기만 썼는데 커리어우먼인 무슬림 친구들과 이번에 며칠 지내면서 사랑과 결혼, 일에 대한 굉장한 딥토크를 했다. 연애결혼을 한 친구들, 맞선(?)처럼 만난 친구 등등. 그런데 특히나 타국에서 만난 여러 사랑의 모습에 큰 감동을 느꼈는데, 이건 정말이지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 따로 올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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