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텃밭 가꾸기

선인장도 잘 못 키우는 내가 뒷마당에 꽃과 채소를 심다니.

by 예쁜 구름

어릴 땐 건물 옥상에 텃밭을 가꾸고 온갖 채소들을 자식 농사짓는 마냥 사랑과 정성으로 기르시던 아빠를 보면서 진짜 열정도 대단하시다 싶었다. 산에 가서 돌을 주어 정체불명의 식물들을 붙여서 기르시기도 했고, 오리 키우겠다고 몇 마리 데리고 오셨다가 하도 꽥꽥 거리는 바람에 3일 만에 어딘가로 보내신 적도 있다.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고 민물잉어부터 시작해서 각종 듣도보도 못한 녀석들을 데려다 키우시기도 했고, 새를 키우고 싶다고 날아다니는 참새를 잡아서 새장에 넣으셨다가 하루 만에 참새들이 새장을 다 뚫고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새를 키우는 꿈을 포기하지 못하신 아빠가 십자매 네 마리를 사서 집안에 풀어놓고 기르셨는데, 강아지처럼 훈련시키시겠다는 의도였다. 참다못한 엄마가 몰래 창문을 열어 다 내보내시고는 새들이 잠깐 사이 도망갔다고 둘러대시기도 했다.

또 무슨 동물을 키웠더라..

햄스터도 며칠 데리고 있어 봤고, 강아지는 동시에 아홉 마리까지 데리고 있어 봤다.

병아리도 옥상에서 스무 마리는 넘게 돌아다녔던 것 같고, 조그마한 거북이도 있었다.

시골도 아닌 도시 건물 옥상에서 자연을 품고 사셨던 분이 우리 아빠다.


그래서인가 나는 도시에서 평생을 자랐음에도 한적하고 조용한 외곽이 훨씬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얘기를 듣고 살았음에도 자연이 둘러싼 조용한 마을에 있는 것이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하지만 난 아빠와 달리 식물 이름도 잘 모르고, 와 예쁘다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식물 문외환이다. 그래도 꽃 사거나 선물 받는 것은 좋아하는데,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꽃병에서 길어야 한두 주면 시들어버리니 그땐 본전 생각도 나서 아까운 마음이 든다.


이제 캐나다에서는 조그마한 뒷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었으니, 알아서 잘 크는 야생화를 좀 심어놓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꼭 야생화가 아니더라도 화분보다야 땅이 낫지 않으려나 싶어 이름도 잘 모르지만 그저 예뻐 보이는 꽃들과 나무를 좀 사들였다. 그래도 몇 주 동안 아침마다 들여다보니 이젠 이름도 좀 외워졌다.


토마토와 상추를 키워보고 싶다는 아들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상추 씨도 뿌리고, 모종도 사다 심었는데, 이게.. 왜 이렇게 재밌는 거지.

결국 파프리카, 파, 오이까지 심었다. 오늘은 한국 마트에 가서 깻잎모종도 사 올 생각이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물 주고 조금 자란 상춧잎은 떼어다 먹어도 본다.


저 번거로운 일이 뭐가 재밌다고 저렇게까지 열정적이시지 싶었는데, 아빠가 그때 참 즐거우셨겠구나 싶다. 그리고 나도 결국 아빠 딸이었구나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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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기르고 채소를 기르면서 내가 나의 페이스를 찾아가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는 것도 같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물리적인 여유가 없으면 확실히 마음의 여유도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회사에서는 텐션을 올려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서는 작은 일에 짜증을 내던 모습에서, 텃밭을 즐기고 충전된 에너지로 일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캐나다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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