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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이스 Sep 13. 2023

살아 봐야 안다.

나는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깡촌에서 태어났다.

장마당(시장)을 가려고 해도 50리나 떨어진 곳에 있어 4-5시간을 걸어 가야 했다.


어릴때 내 꿈은 집 밖을 가장 멀리 떠나 보는 것이었다. TV에서 나오는 콘크리트 바닥이 궁금했고 신호등이 궁금했다. 기차 바퀴가 고무 바퀴라 해도 믿을 만큼 깡촌이었다. 바다를 본 적도 없고 조개를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세상을 누비고 다닐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15살까지의 나는 집에서 70리가 떨어진 회령에 가 본게 전부 였다. 회령만 해도 콘크리트 길이 있었다. 비오는 날 진흙이 달라 붙지 않고 찰랑 찰랑 바닥을 치는게 너무 신기했다. 시골에선 비만 왔다 하면 신발이 구두가 되는 마법을 보곤 했다. 서른이 된 지금의 나는 옛날, 시골의 정서가 그리워 진다. 소똥, 돼지 똥 냄새가 그리워 질 줄은 몰랐다.



시골 출신인 나는 평양 시민이 부러웠다. 말투도 다르고 뭔가 세련된것 같았다. 지하철을 탈 수 있고 승용차가 다니는 길을 볼 수 있는게 부러웠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평양시민이 전혀 부럽지 않았던 일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바로 탈북. 탈북을 하면서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신분을 얻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인도 배낭여행을 떠났다. 뭄바이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가는 코스로 여행 일정을 짰다. 올라가면서 네팔에도 잠깐 들렸었다. 카트만두에 북한 식당이 있다고 해서 들렸었는데, 그곳에서 서빙하는 분들은 평양어, 바로 문화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어렸을때 내가 동경했던 평양 시민인것이다.


평양 시민을 북한에서 보지 못하고, 그곳 네팔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난 여행자의 신분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고 그들은 노동당의 감시하에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인생을 사는 것이지. 만감이 교차했다.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지만 더 이상 평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열등감이 없어졌다. 그래. 인생은 살아 봐야 아는 것이다. 현재 출발 점이 어디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다 보면 결과는 달라 질 수 있다. 어떻게 살아 가는지, 그 과정이 중요한 것 임을 깨닫게 되었다.


마흔살의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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