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23.08.26)남자친구와 함께 오이도 청춘조개로 가고있다.한달에 한번은 꼭 보자고 한 친구들과의 약속이다.셋이서 모였던 모임이 어느덧 여섯명으로, 각자의 짝궁을 데리고 나오는 모임으로 변했다. 서로가 외롭다고 남소 해달라고 할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세월이 무상하다. 한 커플은 지난해 결혼을 해 신혼부부가 되었고 남은건 우리를 포함한 두 커플이다. 우리도 내년 이맘땐 커플이 아니라 부부의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차만 타면 옛날 생각이 난다. 달구지 타던 시절, 화물차에 몸을 실어 오십리 넘는 장마당이 있는 시내로 가던 때, 자전거에 짐을 얹어 집으로 나르던 장면이떠 오른다.
그러곤 곧 행복해 진다. “이야, YJ 많이 발전 했네, 승용차를 타고 전시 보러 가질 않나, 배드민턴을 치질 않나, 지금은 오이도에 점심 먹으러 가질 않나?” 하면서 오빠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는다. 오늘은 특히 밖에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옛날 감정에 사무친다.
“ 오빠, 그거 알아? 밖에 아지랑이가 일렁인다. 밖이 얼마나 더운지 알 수 있는거지. 우린 지금 차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쾅쾅 맞아서 느끼진 못하지만, 옛날 생각 나지 않아,?” 어리둥절한 오빠의 표정이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해 준다. 참고로 난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고, 오빤 도시에서 태어나 문화 차이를 보일때가 많다. 즉 같은 북한이라고 해도 도시에 따라 다른 생활 패턴을 보인다.
“ 오빠, 난 해볕이 쨍쨍하게 내리는 날씨에도 강냉이 밭 김매기를 해야 했어. 농촌지원기간에만 하는게 아니라, 방과후에도 농장의 바쁜 일손을 돕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구. 봄에는 씨앗 뿌리고 여름에는 김을 매주고, 가을에는 수확을 해야 하니, 이건 뭐 농장원이나 다름 없다고 할까? 제일 서러운건, 나한테 주어지는 할당량이야. 저 지평선 끝이 보이지 않는 강냉이 밭을 두 고랑이나 매야 끝난다고 하니까, 그땐 정말 한숨만 나더라. 그래도 그때, 그 무더운 더위에 마셨던 오이냉국은 진짜 시원하고 맛있었어.“
짠하게 바라보는 그이 시선이 느껴진다. 이 적막을 깨기 위해 난 또 개구쟁이가 된다. “ 아이 괜찮아. 난 오빠가 더 짠해. 난 그래도 눈치 밥은 먹지 않고 자랐잖아. 조개를 먹어 본 적은 없지만 강냉이 밥에 된장국은 배 곯지 않고 먹었다고! 눈치밥 그게 더 서러운거 같아,” 라고 선방을 날리니 오빠의 표정이 너그러워 진다. “그건 그래, 난 해산물이며, 맛난 음식을 먹어 봤지만, 눈치밥, 그건 먹을게 못 되더라” 그렇게 우린 오이도 청춘조개로 향했고, 맛난 점심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