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요?
자, 일주일 뒤에 기말고사니까 다들 준비 잘 하도록.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운다.
“일주일뒤 기말고사니까, 준비물로 컴퓨터 싸인펜이 필요해.”
컴퓨터 싸인펜?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담임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컴퓨터 싸인펜 사용해 본 적 없니?”
“네…”
고향에 있을땐 말이죠.
객관식 시험 자체가 없었어요.
질문을 주면 그에 맞게 내가 아는 답을 작성해 나가는, 일명 서술형 질문들이 시험 문제 였답니다.
서술형 질문에 익숙해 있던 내가 객관식 지문을 보니 더욱 헷 갈렸다. 보기에 있는 지문들이 다 정답 같았고 헷갈리는 보기도 많았다. 그때 느낀 감정은 “아, 남조선은 말 장난을 심하게 하는구나” 였던것 같다.
특히 지문중에 “ 그렇지 않은 것은”, “ 옳지 않은 것은”이라는 지문이 나오면 급한 마음에 다 읽지도 않고 답을 작성해 나의 답안지는 비 내리는 장마철 같았다. 나름 최우등은 아니더라도 우등의 성적은 줄곧 받았던 터라, 자존심 상하기 일수 였다.
그리고 뭐 성적표도 남달랐다. 북한은 최우등, 우등, 보통, 낙제, 이런 식으로 성적이 나간다. 학교에 출석만 잘해도 보통 받기는 쉬웠고 숙제만 잘해 가면 우등의 성적은 곧잘 받을 수 있었다.
그런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3살짜리 아이의 심정으로 중학생의 교과 과정을 따라가야 했다. 2개월인가 다니고 졸업한 중학교 1학년 성적표엔 “양가 양가”가 주를 이루었다. 음, 여긴 성적표도 남 다르군.
가끔 어떤 친구들은 나이게 이렇게 말했다. “이야, 북한엔 객관식 지문이 없다니, 그럼 넌 여기서 시험을 잘 보겠다. 서술형이면 다 외워야 하지만 객관식은 잘 찍으면 정답을 받을 수 있으니까 쉽 잖아?”
얼토 당토 않는 소리다. 질문이 헷갈린다고요. 한두번 꽈 나야지, 질문을 이해 못하는데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지?
담임 선생님이 말한다.
“컴퓨터 싸인펜은 문방구 가면 구할 수 있어. 문방구 가는 김에 실내화랑 실내화 주머니도 구비하는게 어떻겠니? 교내에선 교내용 신발을 따로 신어야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문방구는 어디 있어요?”
띠용, 리얼 당황해 하는 선생님의 표정이 보인다.
“반장~”
반장을 다급하게 찾는다.
“쉬는 시간에 전학생이랑 문방구 다녀와. 문방구에서 컴퓨터 싸인펜이랑 실내화 사는거 좀 도와줘”
신나게 놀던 반장이랑 옆에 쫄랑 쫄랑 붙어 다니던 아이가 같이 왔다.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문방구로 향했다.
슥삭슥삭 컴퓨터 싸인펜과 실내화를 찾아서 준다.
주머니 속에 문방구 쇼핑을 할수 있을 정도의 지폐가 손에 잡힌다.
그렇게 문방구 쇼핑을 마치고 나의 기말고사 준비는 끝이 났다.
컴퓨터 싸인펜은 빨강색을 답안지에 먼저 쓰고 정답이 확실해 지면 검정색으로 마킹한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