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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Oct 27. 2021

쓰지 말아야 할 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두 달 전 엄마에 대한 글('엄마라는 이름의 금속')을 쓰면서 참 많이 망설였다. 엄마의 고되었던 생을 말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 잊고 싶은 기억들일 텐데, 흉터만 봐도 아려올 텐데 내가 '쓰고 싶다'는 명목으로 상처를 들춰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무거웠다. 더군다나 쌓인 세월의  무게에 자꾸만 안으로 말려드는 아버지의 어깨를 보니 차마 당신의 어둠을 그대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생략하거나 빗대었다. 글은 다소 두루뭉술했지만 마음은 짓눌리지 않았다.


최근에 글을 썼다가 발행한 지 세 시간 뒤에 내려서 폐기한 글이 있다. 이제는 가족이 아닌 이가 되어버린 어떤 사람에 대한 글이었다. 내 생각을 말하되 조금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쓰고 싶었다. 가족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바라본 그에 대한 생각을 사회적 관습에 편입시켜서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 글로 인해서 상처 받은 가족이 있었다.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 사건을, 그 사람을 소재로 삼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글을 쓸 때 '진솔함'과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솔직하면 진정성 있는 글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해했고 경솔했다. '글쓰기라는 종교'에 타인의 상처를 아무런 가공 없이 바치는 것은 올바른 제의식이 아니다. 옛날 유대 종교에는 제물을 날 것으로 바치지 않고 번제를 드리는 제사의식이 있었다. 희생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연기)를 신께 바치는 것이다. 날 것의 제물은 피만 뚝뚝 떨어지고 그 자리만 붉다. 그러나 '태움'으로써 그 제물은 비린내가 아닌 향기로 멀리 퍼졌다.


글쓰기에 있어서 소재는 제물이다. 글 쓰는 이들은 소재에 늘 갈급하다. 다가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 그러나 타인의 이야기를 쓸 때에는 오래 묵혀야 한다. 내 글로 인해 누군가, 그것도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된다면 그 글은 흠향되지 못하는 피만 뚝뚝 떨어지는 날 것의 살덩이일 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소설, 시 같은 '문학'이라는 번제가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상상력이라는 불에 태우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어느 임계점에 와서는 시와 소설 등으로 확장해 나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 하면 너무 자의적인 해석일까.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그녀의 책 <부끄러움>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다.

내게 글쓰기는 헌신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없다면, 실존은 공허하다. 만일 책을 쓰지 않았다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부끄러움>이라는 책은 '소설'이 아니다. 즉, 위에 언급한 문장은 허구가 아닌 사실이다. 유년 시절 겪었던 저 광적인 장면은 그녀의 내면 바닥에 깔려 있는 치부였다. 그 '부끄러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자기 자신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사회학적으로 썼다고 했다. 추호의 허구도 없이 객관적 물증에 입각하여.


그녀는 이 책을 쓰기 전부터 '소설'이라는 명칭을 자신의 작품에서 떼어버렸다. 가난하고 천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에 대한 책들은 대중의 호평을 받았으나 중년의 여교수(작가 자신)가 외국인 남자와 맺은 불륜을 다룬 <단순한 열정>은 윤리적 비난을 거세게 받았다. 이로 인해 그전에 인정받았던 작품들까지도 싸잡아 비판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작품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다.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가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흉내를 낸다면 그것은 작품이 아니라 그냥 모방이다. 나체의 번제물은 그녀 하나면 족할지도. '아니 에르노'는 하나의 독점적 장르가 되었다.


'아니 에르노'처럼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글을 쓸 때마다 자기 검열에 걸려들지 말라고도 한다. 하지만 최근의 일로 나의 이야기일지라도 타인이 관계된다면 표면적인 것 너머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가까운 이에게 상처를 주고 난 후에야 말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더 이상 식상한 관념적 문구가 아닌 실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타인에게 상처가 아닌 방어가 되어주는 칼이 되어야 한다고.


모르겠다. 글을 쓰면 쓸수록 모르겠는 것 투성이고 어렵다. 그래서 처음 글쓰기를 할 때의 그 천진한 즐거움이 그립기도 하다. 나의 글쓰기는 언제 번제처럼 타올라 흠향될 것인지.







사진 : 아니 에르노의 책 <부끄러움> 표지 (*주의 : 에르노 글이 쓰지 말아야 할 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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