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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un 24. 2020

우리 살러 갑시다

안개 속에서

헛되고 헛될지라도 헛되어서 아름다운 미래 고해성사를 하러 가는 신도들처럼 긴급 대출심사를 받으러 은행에 가는 우리들 불안은 영혼을 감염시키지만 오늘도 질본 브리핑을 보며 신종 불안도 신종 영혼도 곧 개발될 거라고 중얼거리는 오후 잘 가요 세풀베다 씨 이게 다 신종 코로나 때문이지만 끝끝내 삶은 죽음을 걸고 싸우는 일
자! 월요일이에요 '세상 끝 등대'에 불을 켜고 우리 살러 갑시다

 - 안현미 <카만카차 19> 부분 -

                                                          

*칠레의 어떤 마을에선 안개를 '카만카차'라고 부른다.

*루이스 세풀베다 : 최근 코로나 19로 숨진 칠레 출신 세계적  작가. 대표작 <연애 소설 읽은 노인>




슬프지만,


인류의 역사는 재앙과 싸우는 역사이다. 전쟁이든 재해든 뭐든. 어찌할 수 있는데도 혹은 어찌할 수 없어서 뒤로 물러서면서도 죽어가면서도 싸워왔다.


시지프스의 생은 신화가 아니어서 우리 모두가 태어난 이상 인류는 반복하기 싫은 환생을 반복한다.

단지 원죄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하여 기도하다가도 원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겨났고 생겨난 이상 생기기 이전의 무언가, 어딘가, 아니면 생겨났으므로 아무도 모르는 그다음 너머를 향해 싸워가고 있다.


인간으로서 살. 아. 가. 는 과정이 전부라면 이해하겠지만 단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전부라면 난 아직도

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과정이 전부이기에 죽기 전까지 진행형이고 살. 아. 가. 야 한다.


카만카차, 더욱 짙어지는 안개 속에서, 마스크 속에서, 마스크 사이에서 오늘도 불안하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은 불안을 안고 생겨났고 그리고 그 불안을 극복하며 혹은 애써 잊으며 하루하루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가야 할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코로나 19로 인한 암울한 우리의 생활을 이야기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안개 속의 사람들을 환기시키며 삶의 의지, 등불을 켜고 '살러 갑시다' 하며 일어선다.


으쌰! 함께라면 가능하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가장 값진 능력, 신이 믿고 맡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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