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던 10대 시절, 가까이 다가오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워 일정 거리를 두곤 했다. 친한 여자 애들끼리 나누는 '계집애', '가시나'같은 친숙한 언어를 한 번도 들어본 적도 건네지도 않았다. 내게 다가와 나를 함부로 하는 것 같은 가벼움이 정말 싫었다. 그렇게 예민했기에함께 다니는 무리는있었을지언정 '단짝'은 없었다.
그런데 화학을 전공하면서 알게 된 다행스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두 개의 분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는데 일정거리 이상 가까워지면 서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입자들도 그러하고 있었다는 데에 안심을 하고, 우군을 찾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넌 특이하지 않아. 어쩌면 모든 것들이 그럴지도 몰라...
<당신과 나 사이>에서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교수는 말한다.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면 끝내 싸우고 돌아서게 됩니다. 관계를 끊으면서도 서로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관계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 또한 관계를 더 어긋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럴 때는 애쓰지 말고 거리를 두십시오. 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은 결코 서운해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경험해 보면 바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보여주기 싫었던 나의 웅덩이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거리두기이었나 보다. 겉으로는 희미하게 웃으며 속으로는예민함에 스스로를 찌르던. 그래서 슬프던.
나이를 먹고 '어른'이라는 사회적 이름을 달게 되면서 '관계'의 이물감과 나를 드러냄에 대한 부담감은 줄어든 것 같다. 다가오는 이들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내게 무엇이 더해졌기에 그 예민함이 덜어진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두꺼워지며 가슴속에 슬픈 샘이 하나 둘 메꿔지는것인지, 날카로웠던감각이 무뎌져 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내게 찾아오는 시어들을 내 황폐해진 샘에 부어 목을 축일 수 있음을 감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