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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Jun 17. 2020

본능적 거리두기

슬픈 샘의 이유


나는 내가 가진 황홀한 폐허를 생각한다
젖었다 마른 벽처럼 마른
흉측한 웅덩이

가슴속에 저런 슬픈 샘이 하나 있다

                - 문태준의 시 <슬픈 샘이 하나 있다> 부분



내게는 그늘진 웅덩이 하나가 '있었다'. 아니, '있다'일지도 모르겠다.


예민하던 10대 시절, 가까이 다가오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워 일정 거리를 두곤 했다. 친한 여자 애들끼리 나누는 '계집애', '가시나'같은 친숙한 언어를 한 번도 들어본 적도 건네지도 않았다. 내게 다가와 나를 함부로 하는 것 같은 가벼움이 정말 싫었다. 그렇게 예민했기에 함께 다니는 무리는 있었을지언정 '단짝'은 없었다.


그런데  화학을 전공하면서 알게 된 다행스러운 사실이 하나 있다.

두 개의 분자는 서로 끌어당기는 이 작용하는데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면 서로 밀어낸다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입자들도 그러하고 있었다는 데에 안심을 하고, 우군을 찾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넌 특이하지 않아. 어쩌면 모든 것들이 그럴지도 몰라...

<당신과 나 사이>에서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교수는 말한다.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면 끝내 싸우고 돌아서게 됩니다. 관계를 끊으면서도 서로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관계를 좋게 만들려는 노력 또한 관계를 더 어긋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럴 때는 애쓰지 말고 거리를 두십시오. 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은 결코 서운해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경험해 보면 바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보여주기 싫었던 나의 웅덩이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거리두기이었나 보다. 겉으로는 희미하게 웃으며 속으로는 예민함에 스스로를 찌르던. 그래서 슬프던.

나이를 먹고 '어른'이라는 사회적 이름을 달게 되면서 '관계'의 이물감과 나를 드러냄에 대한 부담감은 줄어든 것 같다. 다가오는 이들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내게 무엇이 더해졌기에 그 예민함이 덜어진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두꺼워지며 가슴속에 슬픈 샘이 하나 둘 메꿔지는 것인지, 날카로웠던 감각이 무뎌져 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내게 찾아오는 시어들을 내 황폐해진 샘에 부어 목을 축일 수 있음을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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