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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Aug 07. 2020

장래희망 칸을 비운 아들이 던진 말

아직은 꿈이 없어요. 그럼 엄마는요?

아들이 등교하고 난 뒤 여느 때나 똑같이 너저분한 책상을 치워주다가 유인물 하나를 발견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진작 학교에 제출했을 자기소개서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채 놓여있었다. 녀석이 또 학교에 내야 할 서류를 내게 보여주지 않고 이렇게 방치하나 싶었다.


아이가 오자마자 자기소개서에 대해 물었다. 수기가 아닌 한글 파일로 작성해서 냈다고 한다. '음, 중학생이 되더니 엄마가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네'하고 흡족해하며 꼼꼼하게 잘 작성했는지 물었다.

"장래 희망 칸은 되고 싶은 것이 없어서 그냥 빈칸으로 제출했어요."

이런, 황당했지만 아이의 해맑은 표정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쓰면 어떻게 해. 너 화이트 해커에 관심 있잖아.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쓰기라도 하지."

"관심은 있지만 뭐 별로 당기지도 않아요. 솔직히 꿈같은 거 아직 없어요. 그냥 놀고 싶어요."

"다음부터는 아무거라도 써. 빈칸은 너무하다."

"그럼 엄마는 지금 꿈이 뭔데요?"

"나?... 나도 그냥 놀고 싶다. 하하하..."

"히히히..."

 



'꿈'이란 무엇일까?

원하는 '무엇(what)을 이루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how)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그 정의가 모호할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으면서 기대하는 답은 늘 구체적인 직업이지 '어떻게 살 것인가'처럼 방향을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고, 그 안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나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을 꿈으로 생각해 왔다.


초등학생 시절 세계 고전문학에 빠져있던 나는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일기를 썼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좀 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기대하듯이 의사라든지, 교수라든지 하는 명예와 미래가 보장된 직업을 나 또한 갖기를 원했다.

고등학교에서 진로 선택을 위한 인적성 검사에서  성향은 사회과학과 인문 쪽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문과는 취업에의 문이 좁아 이과를 선택했고 많은 이과생들처럼 나 역시도 의사를 꿈꾸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며 헌신하고 싶다는 '소명적'인 것이 아닌 세속적 성공을 위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리 만만한가.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취직이 잘 된다는 화학과를 선택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민은 없었다. 그저 기성화 된 세상에 가장 핏(fit)이 좋은 직업을 갖길 원했다. 대학원을 진학한 것도 학문에의 열정은 하나도 없이 단지 커리어를 위해 시간과 돈을 바쳤다. 다행히 투자한 만큼의 결과로 안정된 직장에 들어갔고 '꿈'이라는 단어는 잊은 채 그냥 생활인으로 살아왔다.  

일상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허무할 때도 있었지만,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을 나의 비전인 양 위안을 삼고, 내 '' '삶의 의미'를 끼워 맞추었다. 여전히 기성복 안에 적당한 핏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무난한 일상의 행복 속에서도 나는 늘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중학생 때 처음 읽었던 '트리나 러스'의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 을 떠올렸다.

'나도 호랑 애벌레처럼 허망한 기둥을 벗어나 내 본연의 모습으로 탈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의 탈피는 가능한 것일까'라는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림을 반복하곤 했다.

그렇게 막연한 나비의 꿈을 일기장에 끄적거리다 애벌레 기둥 속에서 압사당할 것 같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2년 전 퇴사를 했다.



그 기둥에서 내려오니 이번에는 소속감의 결여로 추위에 떨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방황했다. 나는 어느 곳으로 가야 하나. 그러다가 자유롭지만 불안한 유영을 하는 아들에게 시선이 꽂혔다. 책을 싫어하는 아들을 교육시켜 볼 양으로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늘 그렇듯 달라 아들은 여전히 250페이지의 책을 30분 만에 읽어버리는 신공을 발휘한다. 


사람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지닌다. 어쩌면 이 욕구가 생을 이끌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나에게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사춘기 아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깨닫고 있다.


이렇게 어지러울 때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내 오랜 친구, 일기장을 편다. 앞뒤로 뒤적거리다 5년 전 맨 뒷장에 그렸던 내 생애 도표본다. 계획보다 퇴사가 5년이나 당겨졌다. 회사를 끝까지 다닐 생각은 애당초 없었나 보다. 퇴사를 하고 방송통신대학에서 문학공부를 하겠다는 것과 책을 한 권 내겠다는 것, 그리고 최종적인 목표가 "책 읽어주는 할머니"다. 뭐 그리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내 남은 시간들의 청사진이다. 그냥 좋아하는 것 하며 놀겠다는 계획이다. 단지 의미를 찾는다면 '읽어주는'에 있다. 방향이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한다. 그러나 타인을 향하긴 하지만 이것 또한 나를 위함이다. 빚진 마음을 털어내고자 하는 심산이다. 위에서 말한 그 불안이 이 '빚진 마음'이었던 걸까.


꿈이라는 것이 빛나는 '무엇'이 되어있는 것이라면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왔고 그 '모양새'달랐을 지라도 내가 치있다고 여기는 방향을 향한 시선은 놓치지 않았다. 지금은 글쓰는 사람의 모양새로 "꽃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번데기 속에 있는 중이다.



사진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글. 그림/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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