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계절 특유의 설렘과 생동감보다는, 조락의 이미지 혹은 그 서늘함 때문에 마음 한켠이 뻥 뚤린 것 같은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가는 여름이 아쉽지만은 않은 이유는 짧은 가을이 남기는 아름다움이 정말 찬란하고, 선선한 바람이 사람에게 지친 여름을 달래주는 휴식을 전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삶이 일상이 된 지금. 일상은 부분적으로 정지되어 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만남이나 모임을 자제하고, 운동시설도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하거나 폐쇄되어 있는 상황. 나는 코로나 일상에 삶의 허기를 독서로 달래기는 했지만, 실내 생활의 비중이 늘어나고 스트레스를 음식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다보니 몸의 밸런스는 엉망이 되어만 갔다.
그러던 도중, 지인으로부터 알게 된 '따릉이'. 서울시에서 야심차게 시행하고 있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인데 알아보니 대여소가 정말 많이 설치 되어 있었고, 자전거 도로가 무척 잘 정비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일권이나 정기권을 끊을 수 있는데, 제로페이로 정기권을 결제할 경우 한달에 4000원 정도의 돈으로 매우 경제적이라는 사실도.
따릉이 도전 첫날. 안장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도, 도로 상황에 따라 기어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 한 시간 가량 자전거를 탔다. 그야말로 왕초보의 라이딩. 하지만 10키로 가까이, 평소 차로 다니던 길을 가을 풍경과 함께 달리니 온몸의 신경들이 즐거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세 번째 라이딩을 지나 네 번째.
"매일 가던 코스 말고, 안양천으로 한번 가볼까 언니. 아니, 한강 가보자!"하는 나의 앞뒤 재지 않은 제안. 실제로 지도를 보니 선유도까지 8키로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자전거로 36분 정도 소요된다고 나온다. 평소 자전거를 즐겨 타시는 아빠께서도 한강에 가끔 가신다고 하는 말씀에 용기를 내어 오늘 당장 길을 나서 보았다.
목감천을 지나, 안양천을 달린다. 하천이 넓어지고 좌우의 풍경이 색다르게 변화한다. 그리고 익히 알던 각 구의 랜드마크들을 가뿐하게 지나치며 달리는 기분은 묘하게 상쾌하다. 안양천을 몇 키로 달리니 한강 합수부가 드디어 나왔다. 잠깐 멈춰서 더 커진 물줄기를 마주하고 언니와 정말 좋아했다.
"여기가 한강 맞아?"
"응!"
"더 가 보자!"
이 "더 가 보자"라는 말에, 한강을 마주한 설렘에 우린 페달을 계속 밟을 수밖에 없었고 여의도까지 가고 말았다. 국회의사당과 63빌딩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다니. 내친 김에 IFC몰에 운동복 차림으로 가서 점심도 먹고 커피도 한 잔 사들고 나오는데,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새로운 세계에 잠시 섞여 보는 기분이 마냥 재미있었다. 라이딩의 시작부터 끝까지, 스무살을 갓 넘겼을 때 모든 것이 새로워서 설렜고 두려웠던 잊고 있던 그 감정을 살려주는 것 같았다. 지도 한 장 들고 유럽의 낯선 도시를 헤매던 기분도 떠오르고.
왕복 30키로 완주. 몸은 고단해서 아이를 재우면서 나도 금세 잠이 들고 말 정도였지만, 마음은 설레고 뿌듯해서 꼭 기억하고 싶은 하루였던 오늘. 꾸준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무렵, 나에게 주는 선물같은 날이었다. 행복함을 주는 삶의 요소들이 많이 제한되는 요즘, 지금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