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약간의 불편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인물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나 그 원인을 정말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데서 그러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등장인물의 감정에 빠지게 되는데, 서술되어 있는 담담하고 세밀한 감정들이 마치 나의 감정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어느새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표제작 <애쓰지 않아도>는 평범한 여고생의 친구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으로 이사 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와의 관계가 담겨 있다.
"학기 초반에 친구 그룹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영영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급해졌다. / 내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내게 말을 건 건 그때였다."
소설 속 장면을 보며 현재의 나는 열일곱의 '나'를 만났고, 부모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엄청난 과제를 떠안게 된 당혹감도 떠올랐다.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느끼곤 한다. 몇 년 마다 직장을 옮길 때, 이사를 가야 할 때, 새로운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 할 때. 세계에 '던져진' 것만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글로, 인물의 말로 만나니 마음이 쿡쿡 아파왔다. 내가 앞서 말한 불편감의 실체는 아마 이런 것 같다.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미묘함. 좋아해서 소통하고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느끼껴지는 질투와 미움. 스카이프로 때때로 영상통화를 하고 생일날 메시지를 보내지만 서로가 소원해졌음을 알고 있는, 그런 관계로의 이행. 사람의 마음은 참 변화무쌍한 미지의 영역이라, 그것을 글로 담아내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내가 살아가며 느끼는 '마음의 문제'를 살아있는 인물들의 삶으로 만날 수 있어서 반갑고 고맙다. 작가의 전작들도 다시 한 번 들추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