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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Feb 07. 2022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픔이 눈이 되어, 사람이 되어.


  소설은 경하의 꿈으로 시작된다.


우듬지가 잘린 검은 나무들 위로 눈부신 육각형의 결정들이 맺혔다 부스러진다. 발등까지 물에 잠긴 내가 뒤돌아본다. 바다가, 거기 바다가 밀려들어온다. (24)


  어쩌면 경하가 꾼 꿈은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한 상징일 것이다. 우듬지가 '잘린' 채로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곳에 '놓인' 채 바다에 '잠기게' 되었던 역사 속 많은 이들의 삶에 대한 상징. 경하는 작가로, 민주화 운동 때 희생된 이들에 대한 책을 집필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이고 어두웠던 과거의 사실과 직면하면서 괴로움을 느낀다.


  그녀가 꾼 꿈을 '인선'에게 이야기했고 영화로 만들고자 약속했지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인선에게 연락이 왔고, 인선이 머물던 목공소에서 손가락을 잘린 그녀가 목공소로 당장 향해서 인선의 새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경하에게 하게 된다.

  

  눈을 헤치고 제주의 외딴 목공소로 향하면서, 인선의 이야기는 수면위로 떠오른다. 인선의 어머니가 고이 모아 놓았던 신문 기사들, 찾아 헤맸던 외삼촌의 흔적..활자로 적기에도 부족한, 제주땅에 닥친 비극들. 엄마의 당시 여덟 살 동생이 총을 맞고 언니들이 왔을 거라고 기대하며 집으로 기어 온 장면은 너무 슬프고 안타까워서 자꾸 잔상이 남는다.


  소설 전체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새, 피, 불꽃, 차가움, 우듬지가 잘린 나무, 눈보라, 탄광 속 가득한 유골. 이 소설이 이토록 자꾸 내 머릿 속에 강렬하게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은 이 소설이 이렇게 이미지의 언어로 채워졌기 때문이리라. 누군가의 처절한 아픔. 나는 영원한 타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슬픔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아파하고 싶다. 그리고 애도한다. 누군가의 광기로 아프게 죽어간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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