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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Jul 14. 2022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올해 읽은 소설 중 가장 강렬한 작품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다 읽고 나니 왜 이 소설을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들은 어찌 보면 각각의 이야기지만, 연결지어 이해하는 것도 가능해서 다채롭게 읽힌다.


전쟁으로 할머니집에서 생활하게 된 쌍둥이 형제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1부 ‘비밀 노트’. 개인적으로 소설 속 장면 장면이  너무나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자전적 체험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고 하니 더욱 놀랍고,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내모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치 한 몸처럼 서로에게 의지하고, 때로는 자극을 주며 형제들은 점점 단단해진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가르치며 자력으로 글을 익히는 모습은 놀라웠다. 술집을 전전하며 하모니카를 불며 생활하던 어느 날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찾아오고, 아버지가 국경을 돕는 것처럼 꾸며 형제 중 한 명은 국경을 넘는다. 한몸이었던 형제는 이렇게 분리된다. 


2부 ‘타인의 노트’. 1부에서 ‘우리’였던 그들은 이름을 가지게 된다. 루카스와 클라우스. 알파벳의 배열만 다른 그들의 이름에서 그들의 동질성과 차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2부는 주로 국경을 넘지 않고 남은 루카스의 삶에 대해 다룬다. 루카스는 마티아스라는 어린 아이를 맡아 키우게 되고, 약간의 돈과 할머니의 보석으로 서점을 사서 운영하며 지낸다. 


3부 '50년간의 고독'. 국경을 떠나 재활원에서 지내던 루카스는 형제 클라우스를 찾아 돌아온다. 이때부터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국경을 넘어간 것이 클라우스가 아니라, 루카스라고? 세 가지의 소설을 따로 본다면 무리가 없겠지만 그간의 이야기를 연결지으려 시도하는 순간 독자는 의미의 뒤섞임으로 갈 곳을 잃게 된다. 어쩌면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는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쌍둥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쩌면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독자는 알게 된다.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가 재회하지만, 서로를 부정하며 그들은 헤어진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어떠한 의미로 존재할까.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어쩌면 동일인일지도 모르다. 극한의 상황에서 찾아낸 한몸과 같은, 자신을 도와주는, 자신을 자극하는 또 다른 자아. 그것이 인간이 그러한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 쌍둥이들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청이를 돕는다든가 마티아스를 맡아 키우는 장면을 보면 그들이 '선'을 잃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쌍둥이들의 잔혹함은 할머니로부터, 더 강한 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모두가 잔혹해졌던 '전쟁'의 시대였다. 잔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얼마나 잔혹해지는가, 진짜 악한 존재는 누구인가, 인간은 절대선을 가질까..


시간이 지나고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 


조금 다르게 읽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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