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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Oct 16. 2020

[서평] 황정은, 백의 그림자


두 번째로 읽은 황정은 작가의 작품. 문학인인 내 친구가 극찬하는 작가라 믿고 읽는 그녀다. ‘百의 그림자’라는 소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그림자를 가지고 살아간다. 여기서 그림자는 때로는 나와 별개의 인격체로 ‘일어서기’도 하며 내 몸에 찰싹 달라붙기도 한다. 정신없이 그림자를 따라다가단 그림자에 압도당할 수 있는 우리네의 삶. 소설 속 ‘그림자’라는 상징은 삶의 무게 정도로 보는 것이 적당할까.







p.31 그게 무서운 거지, 그림자가 당기는 대로 맥없이 따라가다 보면 왠지 홀가분하고, 맹하니 좋거든, 좋아서 자꾸 따라가다가 당하는 거야, 사람이 자꾸 맥을 놓고 있다 보면 맹추가 되니까, 가장 맹추일 때를 노려 덮치는 거야.




한편 아래와 같은 구절을 보면, 그림자는 때로 독립된 개체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림자를 상실했을 때 이치에 맞는 언행을 한다든지 자신을 상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았을 때 ‘자아’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86p. 그림자를 절반 넘게 뜯긴 뒤로 이치에 맞지 않는 언행을 할 때가 더러 있어서, 집에 남겨 둘 수만은 없고, 그림자 대신 자극이 될까 싶어서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할아버지의 발 부근에서 그림자의 농도가 유난히 묽었다.



‘백의 그림자’. 사람이 수백명이면 그림자도 수백명. 모두 각자의 그림자를 지니며 살고, 때로는 그림자에 짓눌리기도 하고 압도당하며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평론가 ‘신형철’은 ‘그림자’를 ‘환상적 상관물’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지로 소설에서 그림자는 ‘난쏘공’의 난쟁이나 달나라처럼 일상적인 세계를 환상적으로, 은유적으로 그려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소설 속 서사는 크게 두 가지이다. 주인공인 은교와 무재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전자상가의 철거를 둘러싼 이야기들. 허름하고 낡은, 하지만 누군가의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터전인 전자상가가 철거되고 공원으로 바뀌는 회색빛의 이야기가 슬픈 날것의 현실이라면, 그 와중에 은교와 무재가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와 행위들은 그와 대조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작가가 작품의 말미에 두 사람이 가는 길의 끝에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듯, 결국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언젠간 진짜 사라질 작은 전구가게 ‘오무사’, 먼 길을 온 손님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예비 전구를 하나씩 꼭 더 넣어주는 주인 노인의 따뜻함도 회색빛의 현실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따뜻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09. 마침내 가동을 밀어내고 남은 자리엔 재빠르게 공원이 조성되었다. 오무사는 이 과정에서 다시 사라졌다.



115p.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마뜨로슈까를 보며 무재가 한 이야기 중,


143p.


실린 것도 몇 가지 없이 박스 몇 개하고 스티로폼 조각하고 비닐 같은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이런 것들 때문에 죽는구나, 사람이 이런 것을 남기고 죽는구나, 생각하고 있다가 조그만 무언가에 옆구리를 베어 먹힌 듯한 심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예요.



168p.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중략) 귀신일까요, 우리는, 귀신일지도 모르죠, 이 밤에, 또 다른 귀신을 만나고자 하는 귀신, 하고 말을 나누며 탁하게 번진 달의 밑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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