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도시의 미래, 나의 미래.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특히 대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부동산 불패신화'는 한번쯤 탑승해보고 싶은, 욕하면서도 욕망하는 그런 존재다. 이 책은 건축, 그러니까 부동산 가운데 가장 선호되는 '건물'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투자로서의 부동산 개념은 아예 덜어내고, 부제로 달린 것 처럼 '회색도시의 미래'로서 '상업, 업무공간 그리고 주거가 잘 조화를 이루는 다공성이 충분한 형태의 건축'을 제시한다. 지은이는 미래 회색도시의 대안으로 '무지개떡 건축물'을 제안하고, 이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한 과정을 책에 담았다. 읽는 내내 많은 부분 공감가면서도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건축물, 그러니까 집 또는 건물은 '투자'와는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인데, 그 부분을 덜어내고 건축물을 들여다보니 이렇게나 흥미롭구나, 생각이 들면서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식주 가운데 '주'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맛집 투어에 큰 관심이 없고, 옷은 사춘기 시절에도, 지금도 입고 싶어 아른거리는 옷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주'는 조금 다르다. 여행을 가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숙소, 퇴근 후와 주말의 대부분을 집에 머무른다. 대학생이 되면서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며 자취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경험한 주거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다세대 주택, 아파트, 빌라, 주상복합, 오피스텔, 그리고 다시 아파트. 평균 2년 시점으로 옮겨다니느라 이사도 많이 했는데, 제한된 예산에도 정말 까다롭게 결정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위치'와 '채광', 그리고 그 '주변 환경'이다. 이 주변환경은 까페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아주 대로변은 아니여야 하고, 그렇지만 번화가에 위치한 곳이어야 하고, 세탁소는 가까이 있나, 치안은 안전한가 등을 다(!) 따져서 집을 정했다. '무지개떡 건축'이 추구하는 부분과 많이 일치했던 곳에 거주한 적이 있는데, 공덕동의 한 주상복합이다. 회사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고, 지하철로는 두 정거장, 버스로는 3개 정도 되었다. 1층에는 친구들이 와서 기다릴 수 있는 로비가 있었고, 상점으로 자주가던 빵집과 까페가 있었다. 3층에는 급할 때 갈 수 있던 유명 피부과가 있었고, 몇층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네일샵이 있어 슬리퍼를 신고 내려갔고, 거래한 부동산도 1층에 자리잡고 있어 들리기 용이했다. 주변에는 단골 족발집이 있었고, 요가원이 있었고, 자전거를 타러 나갈 한강공원이 인접해 있었다. 특히 이 지역은 회사가 굉장히 많으면서도 대단지 아파트와 주상복합으로 상주인구도 많아 큰 마트와 맛집들이 꽤나 몰려있었다. 몇년 살다 이사간 뒤에는 산책길마저 생겨서 더 인기 있는 지역이 되어 있었다. 나름의 밀도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밀도 엔진'도 갖춘, 책에서 예시로 나온 무늬만 주상복합인 공간은 아니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의 거주지는 '평생'을 거주할 형태 또는 장소는 아니였다. 모두가 임시로 머무르는 곳. 나역시 2년을 머무르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나왔다. 무지개떡 건축물이 모두 그렇게 되긴 어렵겠지만, 예시로 든 '과천동 무지개떡' 프로젝트처럼, 평생 거주를 희망해볼만한 건축물을 설계하고,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를 상기했다. 최근 이사온 아파트를 수리하고 들어오면서, 이 공간을 나에게 맞게 설계하는 것이 설레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되었다. 더군다나 평소에 고민이 없었다면, 더욱이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설프게나마 미완성인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 일부 참여하여 애정이 담긴 공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정리된 생각은, 무지개떡 건축물이 (모두 그렇게 되긴 어려울지라도) 책에서 예시로 든 지은이의 '과천동 무지개떡' 프로젝트와 같이 평생 거주를 기대할 만한 건축물을 설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늘 일터와 가까운 곳에서 주거하며, 까페, 병원, 세탁소, 사우나(!) 등 상업지구가 근접하며 산책을 위해 한강공원을 나가기 용이한 곳을 주거지로 삼았던 나에게 무지개떡 건축이 제시하는 도시형태와 그 안에서의 삶은 훌륭할 것임을 확신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은, 1인 가구가 많아지고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에, 무지개떡 건축이 추구하는 상업, 업무와 주거가 결합이 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말그대로 지나친 직주근접. 출근 시간이 단축 정도가 아니라, 그냥 한 건물에 있다.
지은이와 같이 자영업자(또는 개인 사업자)이거나 프리랜서, 예술가, 자택 근무자가 아니고서는 회사 규모를 떠나 직장 동료와 상사와 같은 건물에 거주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나 같은 경우엔 같은 동네도 꺼려질 것 같다. 연배 차이 많은 상사와 퇴근길에 만나 같이 지하철을 타면 뻘쭘한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주거는 주거대로, 상업 및 업무지역과 구분을 짓고 싶어하는 욕망은 결국 일과 여가 생활은 분리하면서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을 누리고 싶은 욕망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차를 덜 타도 되고, 걸음으로써 운동이 늘어나는 등 '환경과 건강'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점에서 장점을 가진 이런 형태의 건축형태는 분명 매력적이다. 또 다공성이란 개념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알게 모르게 내가 가슴이 트이고 살만하다 느끼며 누렸던 주거공간은 모두 다공성 비율이 높은 공간이었다. 모든 지역에 적용은 어렵더라도, 한강 부근(왜 비싼 고층 아파트들이 한강 근처를 어느새 이렇게 점령해버렸는지. 현재 제한이 생겼다고 하지만, 멋진 뷰를 앞에서 차지한 곳들이 많다)이나 종로 등 보존할 가치가 있는 마을 위주로 무지개떡 건축물들이 잘 자리잡아 갔으면 좋겠다. 지은이의 설명대로 자연은 단층이기 때문에 더 보존을 해야하고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 어쩌면 이 책은 다층의 건축물을 지혜롭게 잘 꾸려 단층인 자연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리면서 다같이 행복해지자,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