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학원생 남편 Jun 24. 2024

당신의 아내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백설공주와 원더우먼 그 사이 어딘가

 +드라이버를 들고 책상 조립하는 아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잼 뚜껑을 열고 있는 아내는? 혹시 10L짜리 세제를 옮기고 있는 모습은? 남편이 보기엔 한없이 불안하고 다칠 것만 같은 순간의 연속이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멋진 미소와 함께 도와주는 척 잼통을 뺏은 적도 있다. "멋진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지!"라는 포장아래 불안한 당신이 기분 상하지 않게. 그러다 언젠가 한마디 듣게 되었다. "이정돈 나도 해!"


 나는 꽤 큰 기업의 엔지니어 출신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기계에서부터 집체만 한 기계까지 안 만져본 기계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물에 힘을 준다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로서 나에게 자리 잡고 있었다. 꼭 기계를 전공한 현장 출신의 남편이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남자들은 [힘]을 사용하며 논다. 힘 겨루기를 하며 청소년이 되면 싸우기도 하고 성인이 되면 군에 들어가 짐꾼이 되기도, 삽질을 연신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쓰는 행위가 남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실을 서재처럼 바꾸자는 가족회의 결과를 통해서 하얀색 책상을 두 개 샀다. 나무합판 1개와 철로 된 다리 그리고 이들을 하나로 조립할 무수히 많은 나사와 드라이버 두 개가 동봉되어 있었다. 우린 각자 드라이버를 한 개씩 집어 들었고 엔지니어 남편의 진두지휘 아래 척척 조립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뒤돌아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 같다. 매우 불안한 자세로 아내가 드라이버를 돌리고 있었던 것. 그래서 화들짝 놀란마음을 부여잡고 "남편이 해줄게!"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이정돈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오히려 씨익 미소를 날린 뒤 나사를 조립해 나갔다.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책상 하나쯤 누구나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고 잼 뚜껑 역시 마찬가지다. 10L짜리 세제도 광고에는 여성이 사용한다. 약간은 남자로서 거만했던 부분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 아내를 너무 과소평가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때로는 이런 부분이 쌓여 갈등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다칠까 봐 내가 해주겠다고 했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일 때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나의 아내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이 험한 세상을 혼자 살아왔으며, 호리호리 해 보이거나 똥글똥글해 보여도 속근육이 알찬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내의 일을 알아서 척척 도와줄 필요도 있지만, 때로는 아내의 요청을 기다릴 필요도 있다.

이전 02화 아내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