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
"안녕하세요. 김철수라고 합니다."라며 멋있게 다가오던 잘 단정된 머리에 깔끔히 면도된 수염, 반듯한 카라티를 입고 그에 맞는 캐주얼 단화를 신은 멋지던 남자친구는 이제 없다. 언제나 부스스한 머리에 이른 새벽 아니면 늦은 저녁 덥수룩한 수염을 길고 하얀 각질이 어깨 위에 눈 내린 오래된 때 뭍은 신발을 신고 퇴근하는 배 나온 남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때로는 이게 아들인지 남편인지 싶기도 하고 술은 또 왜 이렇게 자주 먹고 자리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양말은 도대체 왜 한쪽은 잘 놔두고 반대쪽은 뒤집어 놓는지 이해할 수 없는 남정네하나 내 옆에서 잔다고 생각이 들 수 있다. 옆집 남편은 성과급 받아서 해외여행 간다는데 어린 날 결혼해 신혼여행 빼고는 여권을 써본 적도 없이 들었다 놨다만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애는 나 혼자 키우는지 집에 오면 TV만 보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하면 이제는 못 참고 화가 날 수도 있겠다. 때로는 이쁘게 화장하고 둘이 나들이도 가고 싶을 텐데 출근할 때 반만큼만 꾸며주면 좋으련만 여지없이 추리닝에 꼴 보기 싫은 선글라스와 슬리퍼를 골라 신는 모습을 보면 이제는 화도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더 이상 멋있었던 남자친구의 모습은 온대 간대 없고 배불둑이 아저씨가 되어버린, 돈 벌어 온다고 가기 싫은 술자리에 매번 끌려가고 참아가며 자리자리마다 웃음을 파는, 퇴근하고 양말 한쪽 제대로 벗어 놓을 힘도 부족한, 옆집 남편의 성과급을 애써 무시하며 혼자 마음 아파하는, 밖에서 일하느라 내 아이와도 친하지 못한, 주말에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선 갑옷이 아닌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남편을 안아주어 감사하고 그러지 못하였다면 오늘은 꼭 안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부탁드린다.